영화 '물랭루즈(Moulin Rouge)'를 2배로 즐기는 법.

1. 감독(바즈 루어만)의 전작들을 미리 본다. '로미오+줄리엣'(1996)의 파격을 즐기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현란한 카메라워크에 현기증을 느낄지도 모르니까.

2. '물랭루즈'를 묘사한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들은 영화를 이해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존 레귀자모가 분한 키 152cm의 꼽추화가의 그림들은 영화의 색채감과 인물 묘사를 살리는 데 부분적으로 기여했지만, 영화의 키워드가 될 수 없었다.

3. 줄리 앤드루스가 부른 'Sound of Music'부터 엘튼 존의 'Your Song', 마돈나(Madonna) 'Like A Virgin' 등의 팝송들을 음미해보자. 1990년대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s'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도 1890년대의 왁자했던 클럽 '물랭루즈'를 이해하는 한 방법이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펼쳐지는 20세기 후반 미국 대중음악들의 향연.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온다.

우리는 극장에서 종종 '깨는' 영화들을 만난다. '무서운 영화'나 '오스틴 파워' 등 패러디 기법을 많이 쓴 코미디 영화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관객의 예상을 깨는 파격으로 도리어 신선한 느낌을 주겠다는 것이 감독의 노림수다.

뮤지컬 영화도 일상의 대사를 노래로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깨는' 범주에 집어넣을 수 있겠다. 문제는 20세기 중반의 전성기를 지나 런던과 뉴욕의 무대에 주도권을 넘겨준 뮤지컬을 스크린에 어떻게 살려내느냐이다. 어지간한 정성을 들이지 않고서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들의 까탈스런 기호를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터.

'물랭루즈'는 호주 출신 바즈 루어만 감독의 이른바 '붉은 커튼' 시리즈의 3번째 작품이다. 사교 댄스계의 이면을 남녀의 사랑과 묶어 우화적으로 표현했던 'Strictly Ballroom'(1992, 한국에서는 '댄싱 히어로'로 개봉)으로 처음 주목받았던 루어만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MTV 스타일로 각색한 '로미오+줄리엣'으로 헐리웃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루어만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물랭루즈'의 설정도 그다지 신선한 건 아니다. 영국의 명문가에서 자라난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은 부르조아적인 가풍을 배격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1899년 파리의 몽마르뜨를 찾은 시인. 사랑을 믿지 않는, 순진남 크리스티앙은 인근의 극장식당 '물랭루즈'에서 '캉캉 댄서' 사틴(니콜 키드먼)에 한눈에 반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은밀히 부유층을 상대하는 고급창녀였던 사틴도 크리스티앙의 간절한 사랑에 마음을 주게 되지만, 인기여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다. 여기에 능글맞지만 부유한 워체스터 공작(리처드 록스버그, '미션 임파서블2'에서 탐 크루즈의 가면에 씌워진 채 자기 두목에게 총 맞아 죽은 사람)이 후원자를 자처하고, 자신의 정부(情夫)가 될 것을 강요한다. 부유하지만 마음에 없는 공작이냐, 가난하지만 진실한 사랑에 눈뜨게 한 시인이냐.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러브스토리는 한국에도 '홍도야 울지 마라', '이수일과 심순애' 등의 레퍼터리를 통해 너무나 자주 다뤄졌던 소재. 루어만 감독은 웹사이트에 올린 '제작 노트'에서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고상을 떨지만, 그보다는 고급 창녀와 귀족 청년의 사랑이라는 소재에서는 '춘희'(알렉산더 뒤마 주니어의 소설)를, 파리 뒷골목의 시인과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병상의 여인을 다룬 점에서는 '라보엠'(푸치니의 오페라)를 더 직접적으로 차용한 느낌이다.

이제 남은 것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빈약한 스토리를 어떻게 지탱하느냐이다. 이미 관객들은 중세 마상 창 시합에 락 음악을 끼워 넣은 '기사 윌리엄'(A Knight's Tale)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루어만 감독은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유려한 색채감, 동화적 상상력, 귀에 익숙한 팝 넘버를 적시적소에 집어넣음으로써 관객의 눈과 귀를 붙들어 논다. 크리스티앙의 사랑고백 'Elephant Love Medley'는 비틀즈, 퀸,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들을 짜집기해 관객들을 웃긴다. 크리스티앙이 사틴에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예요(All You Need Is Love, 비틀즈)'라고 노래할 때 객석에서는 피식 웃음이 터지지만, 이때쯤이면 초반부터 숨쉴 틈 없이 퍼부어지는 음악 공세에 길들여진 관객들은 '계산된 망가짐'으로 이해하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마이애미 해변으로 불러내 한 차례 '망가뜨린' 바 있는 루어만 감독의 모험은 대체로 성공한 느낌. 화가 툴루즈 로트렉이 1899년에 이미 알코올 중독과 성병으로 폐인이 돼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스타일에 묻혀버리고 만다. '20세기 팝송의 향연'속에 '19세기말 파리의 물랭루즈'는 시공간적 배경을 넘어 '포스트모던 뮤지컬'로 다시 태어난다.

주연배우들도 '의외로' 노래를 잘한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서 대사도 별로 없이 광선검을 휘두르던 '정의의 사도' 이완 맥그리거가 이렇게도 노래를 잘할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본업이 가수가 아닌 맥그리거의 노래는 분명 '조성모'보다는 '임창정'에 가깝다. 그래서 더 애절하게 들린다. 촬영중 탐 크루즈와의 9년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싱글로 돌아온 키드먼도 이혼녀에 대한 세간의 입방아에 아랑곳없이 숨은 탤런트를 보여준 느낌.

5250만 달러의 '중급' 제작비를 들인 '물랭루즈'는 이번 주 약 142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려 4위로 올라섰다. 관객의 62%가 여성이라는 조사 결과는 이 영화가 SF, 액션 블록버스터에 물린 관객들에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에서는 오는 30일 액션 블록버스터 '툼레이더'와 맞대결을 벌인다.

지난 주 1위로 데뷔했던 '진주만'은 이번 주 3천만 달러의 수입으로 2위 '슈렉'(2840만 달러)를 제치고 가까스로 1위를 고수했다. 지난 주말 3일간에 비해 약 49%나 하락한 수입을 올려 이 영화가 꾸준히 관객몰이를 했던 '타이타닉'보다는 제작비에 비해 많은 수입을 올리지 못한 '고질라'에 가깝다는 전망을 드리우고 있다. 작년 메모리얼 데이에 개봉됐던 '미션 임파서블2'의 흥행 감소폭은 52%, 98년작 '고질라'의 낙폭은 58%에 이르렀다.

그러나 '진주만'은 2억 달러 내외의 수입을 올려 단일 영화 사상 최고 제작비인 1억5275만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탑 10 중 가장 낮은 33%의 흥행 감소를 보이며 개봉 17일째 1억5천만 달러에 육박한 성적을 올린 '슈렉'은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디즈니의 '라이언 킹'이 가지고 있는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 기록(3억1300만 달러)의 경신 여부는 미지수. 속편을 구상중이라는 전언도 들리는 이 영화는 다음주에는 '진주만'과 순위를 맞바꿀 것으로 보인다.

신작 3편 중 동물의 장기를 이식받은 경찰 지망생을 다룬 코미디 '애니멀'이 1980만 달러의 수입으로 3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개그 콘서트'인 'Saturday Night Live'의 스타 롭 슈나이더를 전면에 내세운 동 영화의 제작비는 2200만 달러에 불과, 제작사인 콜럼비아사의 알찬 장사를 전망케 한다. 1999년 12월 선보인 슈나이더의 데뷔작 'Deuce Bigalow: Male Gigolo '의 개봉 수입은 1220만 달러에 그쳤었다.

마틴 로렌스와 대니 드 비토가 공연한 코미디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What’s the Worst That Could Happen?)'는 1330만 달러로 신작중 가장 낮은 5위를 차지했다. 제작비 4200만 달러를 들인 동영화는 그러나 1년 전 선보인 로렌스의 '빅 마마의 집(Big Momma's House)'의 2570만 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흥행 수입을 보였다.

보통 전몰장병 기념일 연휴가 지나고 난 후에는 흥행이 주춤했던 전례와 달리 이번 주에는 3편의 신작들이 개봉돼 탑 10 영화들의 총수입이 '미션 임파서블2'와 '스타워즈 에피스도 I'이 1위를 지킨 작년과 재작년에 비해 무려 28%, 58%의 증가세를 보였다. 다음 주에는 '진화(Evolution)'와 '황새치(Swordfish)'가 새로이 순위 경쟁에 가세한다.


다음은 이번 주 박스 오피스 순위. ( )는 지난 주 순위, +는 데뷔작.
1 (1) Pearl Harbor ......................... $30.0 million
2 (2) Shrek ................................ $28.4 million
3 (+) The Animal ........................... $19.8 million
4 (22) Moulin Rouge .........................$14.2 million
5 (+) What's The Worst That Could Happen? .. $13.3 million
6 (3) The Mummy Returns .................... $ 7.5 million
7 (4) A Knight's Tale ...................... $ 3.4 million
8 (6) Bridget Jones's Diary ................ $ 2.1 million
9 (5) Angel Eyes ........................... $ 1.9 million
10(8) Memento .............................. $ 1.1 million

덧붙이는 글 | 이왕 관람에 도움을 주기 위한 영화평이니 '물랭루즈'에 쓰여진 음악들의 리스트를 대충 적어봅니다. 

50년대
- 마릴린 먼로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
60년대
- 줄리 앤드루스 'Sound of Music'(동명 뮤지컬)
- 엘튼 존 'Your Song'
- 비틀즈 'All You Need Is Love'
70년대
- 패티 라벨 'Lady Marmalade'
- 폴 매카트니 앤 윙스의 'Silly Love Songs'
- 스팅 'Roxanne'

80년대
- 머다나(Madonna) 'Like A Virgin'과 'Material Girl'
- 조 카커 & 제니퍼 원즈 'Up Where We Belong'
- 드바지의 'Rhythm of the Night'
90년대
- 너바나 'Smells Like Teen Spirits'
- 휘트니 휴스턴 'I'll Always Love You'

 '물랭루즈'에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영화 촬영이 대부분 호주 시드니에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제작진의 상당수도 호주 사람들이 들어갔습니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제작비를 미국에서 끌어다가 호주에 쏟아부은 셈이죠. 폭스사의 사주가 호주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어쨌든 재능있는 자국 감독 덕에 호주라는 나라가 헐리우드 호황의 수혜를 톡톡히 본 셈입니다. 영화 흥행의 성공으로 감독의 차기작도 호주에서 다시 찍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한국은 도대체.... 
 
 '물랭루즈'를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은, 한국의 이명세 감독이었습니다. '물랭루즈'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선 이명세 밖에 없다는 느낌.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후 차기작으로 공포영화를 구상하고 있다는 이명세 감독도 미국 진출에 생각이 없지 않다고 하니 한번 지켜볼 일입니다.

2001-06-04 09:04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왕 관람에 도움을 주기 위한 영화평이니 '물랭루즈'에 쓰여진 음악들의 리스트를 대충 적어봅니다. 

50년대
- 마릴린 먼로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
60년대
- 줄리 앤드루스 'Sound of Music'(동명 뮤지컬)
- 엘튼 존 'Your Song'
- 비틀즈 'All You Need Is Love'
70년대
- 패티 라벨 'Lady Marmalade'
- 폴 매카트니 앤 윙스의 'Silly Love Songs'
- 스팅 'Roxanne'

80년대
- 머다나(Madonna) 'Like A Virgin'과 'Material Girl'
- 조 카커 & 제니퍼 원즈 'Up Where We Belong'
- 드바지의 'Rhythm of the Night'
90년대
- 너바나 'Smells Like Teen Spirits'
- 휘트니 휴스턴 'I'll Always Love You'

 '물랭루즈'에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영화 촬영이 대부분 호주 시드니에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제작진의 상당수도 호주 사람들이 들어갔습니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제작비를 미국에서 끌어다가 호주에 쏟아부은 셈이죠. 폭스사의 사주가 호주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어쨌든 재능있는 자국 감독 덕에 호주라는 나라가 헐리우드 호황의 수혜를 톡톡히 본 셈입니다. 영화 흥행의 성공으로 감독의 차기작도 호주에서 다시 찍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한국은 도대체.... 
 
 '물랭루즈'를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은, 한국의 이명세 감독이었습니다. '물랭루즈'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선 이명세 밖에 없다는 느낌.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후 차기작으로 공포영화를 구상하고 있다는 이명세 감독도 미국 진출에 생각이 없지 않다고 하니 한번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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