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에게 전황을 알리는 전령의 손목에 롤렉스시계가 채워져 있고, 고을 원님의 생일 잔치에 불려나간 기생이 가야금으로 서태지의 '하여가'를 뜯는다면 이같은 설정을 엽기라고 표현할 것이다. 전자가 실수였고, 후자가 코미디 프로 PD의 의도적인 연출이었다면, 진지한 중세 기사의 로맨스 영화에 시대착오적인 설정이 남발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지난 주말 북미 전역에서 개봉된 영화 '기사 이야기(A Knight's Tale)'는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기사들의 마상 창 시합을 다룬 '스포츠 영화'이다. 오프닝 타이틀과 함께 그룹 퀸의 'We Will Rock You'가 흐를 때, 관중들은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친다. 여기에 얼굴에 자기가 좋아하는 기사들의 이름을 페인팅한 열렬팬들이 있다. 시작부터 "이거 망가뜨릴 작정을 한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게 한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 '못 말리는 로빈 훗'의 중간쯤에 머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관객들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고민하지만, 그같은 걱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주인공 윌리엄 대처(헤스 레저)는 마상 창 시합(joust)을 하는 기사의 수발을 드는 종자(從者). 어느 날 주인이 창 시합 대회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자, 주인의 갑옷을 입고 대리 출전,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평소 기사가 되길 흠모했던 소작농의 아들 윌리엄은 내친 김에 진짜 기사 행세를 하게 되고, 여정 중에 만난 젊은 제프리 초서(14세기 영국의 대문호. 그가 집필한 '캔터베리 이야기'중에는 영화와 전혀 다른 버전의 '기사 이야기'가 있다)의 도움으로 신분증을 위조, '울리히 폰 리히텐슈타인 경'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각 지역의 마상 창 시합에 계속 출전한다.

어느덧 최고의 기사로 명성을 날리고, 귀부인 조슬린(새넌 소새먼)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윌리엄. 그는 조슬린이 준우승자인 윌리엄을 더욱 따르는 것에 질시를 느낀 애드헤머 백작(루퍼스 세웰)과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 마상창시합 선수권대회'까지 자웅을 겨루는 승부를 계속 펼쳐야 한다. 물론, 윌리엄은 시련 속에 사랑과 명예를 모두 낚게된다.

고난을 이겨내고 사랑과 부를 함께 얻는 이야기들은 그 동안 영화에서 수도 없이 다뤄졌던 주제들. '플래시댄스'에서 제니퍼 빌스가 보수적인 심사위원들 앞에서 격정의 댄스를 선보인 것도, '록키'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분노의 주먹으로 냉동육을 두들기며 시합을 준비한 것도 비참한 현실을 딛고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모든 영화들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빈약한 스토리의 공백은 배우나 촬영 등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게 된다.

영화 전반을 흐르는 70년대의 록음악들은 30-40대 이상의 중년층을 위한 포석.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 흐르던 장중한 음악들은 갈 곳이 없다. 그룹 퀸의 'We Will Rock You'로 시작되는 영화는 War의 'Low Rider', 씬 리지의 'The Boys Are Back In Town', 바흐만-터너 오버드라이브의 'Takin' Care Of Business' 등 70년대를 풍미한 음악들로 뒤덮인다.

그중 압권은 윌리엄과 조슬린의 댄스 장면. 중세풍의 단아한 연주곡으로 시작되다가 어느 틈엔가 데이빗 보위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와 영화 속 남녀들은 'Golden Years'에 맞춰 세련된 춤을 보여준다.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소품을 적절히 집어넣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무래도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려는 순간까지 AC/DC의 'You Shook Me All Night Long'과 로비 윌리엄스가 퀸의 다른 멤버들과 리메이크한 'We Are The Champions'을 써먹는 걸 보면, "이거 너무 많이 우려먹는구먼"이라는 불평이 절로 터져 나온다.

시대상을 거스르는 연출은 음악의 과용에만 그치지 않는다. 중세에 쓰이지 않았던 감탄사 'wow'가 조슬린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여자 대장장이 케이트가 윌리엄을 위해 특별히 고안한 갑옷에 자기만의 트레이드마크로 나이키 문양을 새길 때는 실소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요즘같은 세상에 FM대로 이뤄지는 게 있느냐는 감독의 항변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LA 컨피덴셜'의 시나리오 작업으로 제법 이름을 날린 브라이언 헤즐런드는 멜 깁슨을 기용해 만든 '페이 백'에서 시종일관 주연의 카리스마에 짓눌리는 연출력을 보였다. 까탈스런 스타 배우도 없는 제작비 4천만 달러의 저예산 액션 영화에서, 이제 시나리오 작가 이상의 역량을 보여줘야 할 헤즐런드는 마상 창 시합 장면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갑옷에 부딪쳐 부러지는 창과 뒤로 비스듬히 상체가 접히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기사들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정말 이 단조로운 마상 창 시합을 중세의 서민들이 즐겼을까?

'기사 이야기'는 중세를 배경으로 한 스포츠 영화이면서도, 줄거리보다는 70년대 롹 음악으로 더욱 기억될 영화이다. 만약 주연인 헤스 레저가 이 영화를 '자신의 출세작'으로 칭할 만한 인기스타가 되지 않는다면.

'기사 이야기'는 감독의 새로운 '실험'에 높은 점수를 준 평단의 호평과 신예 헤스 레저의 섹스 어필을 내세운 마케팅 전략, '미이라2'의 위세에 눌려 대작들을 내놓지 않은 타 스튜디오들의 소극적인 태도 등 갖은 변수에 힘입어 1700만 달러의 수입으로 2위에 올랐다. 8천만 달러까지는 무리 없이 수입을 올려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보장받을 것이라는 전망.

첫 주 68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려 흥행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던 '미이라2'는 전주에 비해 절반이상 수입이 줄어들었지만, 3220만 달러의 수입으로 둘째주에도 1위를 지켰다. 극장당 수입도 9443달러로 역시 1위. 개봉 9일만인 12일 1억 달러를 넘어선 '미이라2'는 최종적으로 1억7천-8천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릴 것으로 보여 속편으로는 이례적으로 전편의 흥행 기록을 넘어서는 영화가 될 것 같다.

닥터 돌리틀2(Dr. Dolittle 2), 무서운 영화2(Scary Movie 2), 쥬라기 공원3 (Jurassic Park III), 러시아워 2(Rush Hour 2), 아메리칸 파이2(American Pie 2)등 올 여름 개봉하는 속편들이 전편의 2/3 수입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으로 기선을 제압한 '미이라2'의 성공으로 앞으로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의 물량공세가 한층 심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음주에는 올해 들어 2번째(3월의 '멕시칸'이 처음) 작품을 내놓는 드림웍스사의 '애니메이션 코미디' 슈렉과 지난 1년간 두 편의 출연작을 연이어 1위에 놀려놨던 제니퍼 로페스의 '엔젤 아이즈'가 맞붙는다. 두 영화가 각각 겨냥하는 관객층이 다른 상황에서, 맞대결에 따른 위험부담은 크지 않아 순위에 연연하지 않는 싱거운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5월 마지막 주에 개봉할 '진주만'까지 포함해서 5월 개봉작들은 모두 5편에 불과하다. 여름 흥행의 전초전인 5월에 불과 5편의 영화만이 선보인 것은 '백 투 더 퓨처3', '전선위의 참새' 등이 개봉된 1990년 이후 처음이다.

다음은 이번 주 박스 오피스 순위. ( )은 지난 주 순위, +는 데뷔작.

1 (1) The Mummy Returns ............... $32.2 million
2 (+) A Knight's Tale ................. $17.0 million
3 (3) Bridget Jones's Diary ........... $ 4.5 million
4 (2) Driven .......................... $ 3.015 million
5 (5) Along Came A Spider ............. $ 3.0 million
6 (4) Spy Kids......................... $ 2.5 million
7 (6) Crocodile Dundee in Los Angeles . $ 2.1 million
8 (7) Blow ............................ $ 2.0 million
9(12) Memento ......................... $ 1.2 million
10(15) The Tailor of Panama ............$ 800,000

덧붙이는 글 | 영화 중간에 "Southern Front, Battle of Poitiers(포와티에 전투, 남부 전선)"라는 캡션이 나오길래 732년의 유명한 전투(프랑크 왕국이 이슬람군을 물리쳐 유럽 기독교 문화를 지킨 전투)를 가리키는 줄 알고, '이건 옥의 티'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14세기 중반에 이 지역을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가 공방전을 벌인 또 하나의 '포와티에 전투'가 있더군요. 

 이 대목을 놓고도 감독과 다른 스탭, 제작사간에 여러 얘기가 오갔을 것입니다. 사극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작업인가 하는 생각이 내심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다른 평론가들중에도 이 대목을 놓고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더군요. 무언가에 칼을 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군요.

2001-05-14 13:4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영화 중간에 "Southern Front, Battle of Poitiers(포와티에 전투, 남부 전선)"라는 캡션이 나오길래 732년의 유명한 전투(프랑크 왕국이 이슬람군을 물리쳐 유럽 기독교 문화를 지킨 전투)를 가리키는 줄 알고, '이건 옥의 티'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14세기 중반에 이 지역을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가 공방전을 벌인 또 하나의 '포와티에 전투'가 있더군요. 

 이 대목을 놓고도 감독과 다른 스탭, 제작사간에 여러 얘기가 오갔을 것입니다. 사극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작업인가 하는 생각이 내심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다른 평론가들중에도 이 대목을 놓고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더군요. 무언가에 칼을 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군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