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례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열 개의 우물>이 2024년 10월3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70-80년대 여성노동과 인천 빈민지역의 탁아운동을 함께 했던 여성들을 조명했다. 그녀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기대어 그 시대를 살았는지, 그 이후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한 여성들과 아이들을 따뜻하게 함께 품어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서 열 편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편집자말] |
십 분만 걸어 나가면 바다였다. 예닐곱 살 아이 걸음으로도 충분했다. 쓰레기 날리는 짧고 좁은 골목을 달려 나가면, 좁고 지저분한 회색 길이 있었고, 그 바로 앞에 좁고 더러운 회색빛 바다가 누워 있었다. 수평선 대신 거대한 목재 공장과 창고들이 줄지어 있던 그 바다를 나는 좋아했다. 옆에서 아주머니들이 그물을 꿰매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늦도록 뛰놀았고, 밤이 되면 공장 불빛이 바다 위에서 반짝였다. 그 곳에서 오래 살지는 않았다. 여덟 살 때 나는 바다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또다른 인천의 달동네로 이사 갔다.
하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인천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인천이 고향 같아요"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동네는 고작 두 해를 지낸 동구 만석동 판자촌이다. 편의상 '판자촌'이라고 썼지만, 사실 그 곳은 판잣집도 아닌 루핑집들이 갯벌에 모여 만들어진 동네였다. 검은 천에 기름을 먹여 대강 지붕을 두른 것을 '루핑'이라 부른다. 어른들은 새벽부터 공장이나 갯벌로 나갔고 밤에는 천막 아래서 굴 껍데기를 깠다. 나의 젊은 어머니는 연고 없던 그 동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비영리 공부방을 열고 꾸려나갔다.
두어 칸 작은 공간의 이름은 큰물공부방이었다. 얇은 벽을 타고 뱃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이 있었고 잘 웃는 선생님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공부방에는 책이 많았다.
만석동 철거투쟁 속에서 만났던 인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