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자리 구하기> 스틸컷
디오시네마
<잠자리 구하기>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잠자리 같은 학생들을 구하고 싶은 홍다예 감독의 일상 다큐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이유로 사회복지사와 NGO 활동가를 꿈꿨던 그녀가 다큐 감독이 돼 만든 작품엔 자신이 살아온 길과 그 길에서 고통 받았던 친구들이 담겼다. 불안의 나날 가운데 어느 친구 하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영영 마주할 수 없게 됐다고 전한다.
도전과 성취라는 흔한 영웅담이 아닌 낙방과 절망, 그리고 우울증이 이 영화 안에 담겼다. 학창시절 친구를 잃고, 이제는 스스로가 우울증을 겪는 홍다예다.
어느 날인가, 그녀는 마포대교 위에 선다. 엄마는 그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을 쏟아버리고, 아버지도 그저 미안하다고 말할 뿐이다. 무엇이 그저 열심히 살았을 그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런 기억으로 남았을까. 홍다예는 어째서 마포대교 위에 섰던 것일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그녀다. 친했던 친구와도 멀어지고, 또 다른 친구와도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대학교 동아리방에서 한 친구는 홍다예에게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관계도, 나 스스로를 아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홍다예는 여전히 여물지 않은 인간인 것만 같다.
영화는 끊임없는 방황의 기록처럼 보이기도 한다. 욕설로 점철된 발언들과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인간관이며 세계관따위가 모두 그렇다. 어지러운 기록의 나열 가운데 분명히 떠오르는 건 방황하는 청춘, 그 자체다.
영화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건 역시 한국의 입시다. 입시와 입사 모두가 인간을 불안하게 한다. 그 사이 관계맺음이며 공동체 같은 건 들어설 자리를 얻지 못한다.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서 불안과 방황, 우울의 흔적들만 역력하다. 이것이 그저 홍다예 개인의 이야기만이 아니기에 한국사회가 <잠자리 구하기>를 함께 읽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닐는지.
새로운 교육감에게 바라는 것
2022년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40%가량이 일상생활 가운데 스트레스 지수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 교육부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도 41.3%가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응답했다. 중·고등학생 가운데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의 깊은 우울감을 경험한 비율은 무려 28.7%다.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서 짙어지는 우울감은 청소년 자살·자해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부분이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고, 그중 일부만이 살아남는 현재의 교육체계가 공동체를 위해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지난 반세기 가량이나 수능이란 좁은 문과 그를 향해 내달리는 체계를 유지해온 것이다. 대체 얼마나 더 많은 학생이 쓰러져야 이를 그만둘 것인가. 더는 효율적이지도 않은 이 체제를 언제까지 그대로 놓아둘 것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