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97 >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IMF 외환위기, 공동체가 무너지던 시작점
< 1997 >은 시기를 놓치고 벼랑 끝에 몰린 한국이 IMF의 손을 붙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또 IMF가 협상 동안 지나치게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당시 협상과 경제상황, 정부 정책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한 연구자들의 입을 빌려 이 결정이 한국사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확인한다. 이를테면 노동자의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법안의 통과, 그로부터 본격화된 기업, 나아가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말이다.
태준식은 이로부터 한국사회의 특정 집단이 위기극복을 위한 제물로 쓰였다고 확언한다. 중산층을 구성했던 노동자들이 그 탄탄했던 지위를 잃고 몰락하고 국가와 기업, 또 재벌이 그를 딛고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지난 사반세기를 거칠게 살피자면 가히 틀린 말도 아니겠다.
< 1997 >은 갈 길 바쁜 영화다.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를 거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IMF 외환위기의 희생양으로 붙들린 노동자 계급의 억울함을 비추고 ▲국익을 위한 최적의 선택을 내리지 못한 정치가, 특히 김대중 정부의 잘못을 부각하며 ▲오늘날까지도 IMF 외환위기가 남긴 영향을 제대로 정리해 평가하려 들지 않는 국가를 비판한다. 한편으로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정보공개센터의 노력을 상찬하고 ▲IMF를 앞세워 동아시아에 제 영향력을 확장하려던 미국의 본색을 까발린다. 이 과정에서 결코 쉽지 않은 ▲IMF 외환위기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하고 ▲한국이 이에 대처했던 우스꽝스러운 상황, 이를테면 금 모으기 운동 같은 모습을 재평가한다. ▲마땅히 제 역할을 해야 했던 고위 국가공무원들이 협상에 나서며 국익보다 제 영향력을 키우려 했단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가뜩이나 쉽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가며 수많은 소재를 놓지 않으려 한 결과가 무엇인가. 영화는 어느 하나의 주제를 힘 있게 밀고 가지 못한다. 그로부터 메시지는 흐릿하게 변질된다. 영화에 충실히 집중하지 못한 관객은 영화 제작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정보공개센터가 확보한 문건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다.
그나마 그를 주목한 이도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영화가 다룬 다른 많은 소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안을 소개하는 데도 정신없는 가운데, 정치인을 비판하는가 했다가 정부를, 다시 협상 참가자를, 또 미국과 IMF를, 그렇게 거듭하여 과녁을 바꾸어간다. 그중 어느 하나를 진득하게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그만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거나 너무 다양한 자료를 버리지 못했던 탓이 아닐까 싶어 이해는 가는 마음이다.
또 하나 아쉬운 건 영화가 선택한 구성이다. 영화는 두 명의 진행자를 두고 영화를 풀어가려 한다. IMF 외환위기를 인터뷰나 자료화면, 또 내레이션으로만 설명하기엔 자칫 너무 어렵고 지루해질까 우려했기 때문일 테다. 그로부터 선정된 이는 임재성 변호사와 가수 이랑이다. 임재성은 스튜디오 진행자로서 중심을 잡고, 이랑은 이론적 설명이 필요한 상황마다 투입돼 이해를 돕는다.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태준식 감독은 이랑의 역할에 대하여 일종의 '고스트 프로젝터'를 의도했다며, 귀신처럼 등장하고 개입해 설명을 돕고자 했다고 부연했다. 임재성 변호사 홀로 모든 설명을 풀어가기엔 역할이 과중하게 느껴졌단 뜻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