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침몰참사 직후 정부는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사고수습을 총괄할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해 운영했다. 특별운영팀엔 팀장과 반장 아래 열 명의 부이사관이 배치됐는데, 그중 하나가 지원팀 해양환경반장으로 임명된 남형기 부이사관이었다.

세월호 침몰참사 이후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를 전 국민이 기억한다. 골든타임이 무력하게 흘러가고 추가 생존자를 찾지 못한 채로 정부와 공적 체계의 무능만이 부각되었다. 그저 그 정도면 다행. 사고 직후 대통령의 행적을 비롯한 원인규명,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까지가 하나하나 지켜보는 이의 분통을 터뜨렸다. 수많은 아이들이 무력하게 잃어버리고 후속 절차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그때 그 시절을 겪어내는 게 힘겨웠던 이들이 무척이나 많았을 테다.

재수학원에 갇혀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에 매진하던 감수성 예민한 재수생 남아름도 다르지 않았던가 보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이라면, 열아홉 남아름에겐 세월호 참사와 무관하지 않은 가족이 있었단 거다. 앞서 언급한 남형기 해양환경반장(당시), 중앙사고수습본부 특별운영팀 일원이었던 공직자가 그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애국소녀 포스터
애국소녀포스터남아름

세월호 참사 뒤 해수부 공무원 아빠에게 보낸 편지

또래 아이들은 바다 아래 수장됐는데 나 혼자 좋은 대학 가겠다고 공부나 하고 있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남아름이다. 안양 단원고와 인접 지역 출신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는 교실에선 매일 억눌린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고 했다. 가뜩이나 재수 중이라 스트레스도 많았을 터에 감정까지 솟구친 탓일까. 남아름은 제 아버지가 근무하는 세종시 해양수산부 부처 사무실로 꼭꼭 눌러쓴 편지 한 통을 부친다.

'한국 현대사에 지워져서는 안 되는 사건의 담당 공무원인 아빠에게 힘내시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끊임없이 죄의식을 가지고 자책하십시오.'

그 편지를 받은 아버지는 무슨 마음이었까. 서로 그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채로 수년의 시간이 흘러 딸은 집 서랍에서 아버지에게 부쳤던 편지를 발견한다. 다시 몰래 그를 챙겨온 그녀가 그를 제가 만드는 영화의 중심된 소재로써 활용하니, 그것이 이 영화 <애국소녀>가 되겠다.

아버지 남형기는 행정고시 합격 뒤 특임장관실, 해양수산부 등을 거쳐 최근엔 요직인 국무조정실 국무2차관에까지 오른 고위공직자다. 행정부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이 나라 국가공무원 사회의 중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때 학내언론에 몸담고 사회부조리를 고발하는 기자가 되길 꿈꿨다는 그가 공직사회로 방향을 튼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고민과 사상의 변화를 겪었을까. 그를 가까이서 바라봐온 딸의 시각을 통하여 관객은 이 시대 어느 공무원의 초상과 마주하게 된다.

애국소녀 스틸컷
애국소녀스틸컷남아름

제 부모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딸

<애국소녀>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남아름의 장편 다큐멘터리다. 제 아버지와 어머니, 적잖이 특별한 부모를 둔 그녀의 가정사를 상시 들고 다니는 듯한 카메라를 통해 들춰본다. 다분히 일기스러운 사적 기록 가운데서 한국사의 큰 줄기들, 또 그 흐름이 개인의 삶과 충돌하여 빚어낸 사건들을 살필 수 있다는 게 이 영화가 빚어내는 유효한 자극이다.

다큐는 감독 남아름이 제 부모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사이, 사랑과 우정이 서로 적절히 배합된 형태로써 둘은 결혼에 이르렀다. 시대도 시대거니와 남달리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들은 제 쌍둥이 딸들을 애국소녀로 길러냈다.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줄 아는, 역사적 사명을 생각하는, 체제보다도 인간 그 자체를 조명하는 인간으로 교육하려 했다. 이들이 얼마나 제가 받은 교육에 걸맞은 인재로 자라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각자도생이란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공감을 사는 이 시대에 특별한 집안의 분위기를 가졌던 건 분명하다 하겠다.

영화의 두 축은 남아름의 부모다. 처음엔 나란히 친구로 같이 섰으나 어느 순간 갈라진 길이 둘을 전혀 달리 보도록 이끌었다. 결혼하면 퇴사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 남아름의 엄마 변현주도 다르지 않았다. 끝까지 버티다 결혼을 코앞에 두고 퇴사했고, 쌍둥이 아이를 낳은 뒤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이 가치 있단 걸 모르지 않음에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스스로가 동물처럼 여겨졌단 이야기가 비슷한 삶을 산 많은 여성에게 공감을 살 수도 있겠다.

사회적으로 쓰임을 갖고 싶단 열망과 경력단절이란 경험이 그녀를 페미니즘 활동가의 길로 이끌었다. 남편이 공직사회에서 제 세계를 확장하는 동안, 집 안에 틀어박힌 주부로서 격차를 느꼈다는 말은 어떠한가.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온전히 떠안은 채 고립된 당대 여성의 문제를 풀어내는 틀로써 페미니즘을 선택한 건 틀림없이 유효했을 테다. 그녀의 활동이 자연스레 가정폭력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여성을 구하는 여성긴급전화로 이어지고, 여성의 고립을 풀고 연대를 촉구하는 활동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꽤나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애국소녀 스틸컷
애국소녀스틸컷남아름

끝내 침묵한 아버지... 입을 열지 못한 딸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 어쩌면 엄마보다도 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남아름의 아버지 남형기의 이야기다. 영화의 도입부, 어머니의 농담 섞인 설명처럼 학생운동과 사회변혁의 길로부터 변절해버린 아버지는 공직사회의 일원으로 권력 가운데 편입되길 선택했다. 남형기는 행정의 위력과 효력을 실감한 뒤 공직사회 내부부터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제 길을 택했다 말한다.

실제 세상은 빠르게 변하여서 독재정권의 연장인 노태우로부터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을 거쳐 오늘의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모습을 갖추었다. 그 시간 동안 남형기가 겪었을 행정의 모습 또한 바뀌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는 제 딸의 카메라 앞에 그와 관련한 어떤 말도 꺼내려 들지 않는다.

이유야 분명하다. 그는 법으로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공직자이기 때문이다. 행정고시를 통해 조직에 발을 들인 소위 엘리트 관료로서 세월호 침몰 참사며 박근혜 탄핵집회 등 역사적 순간마다 해수부와 청와대 같은 중심된 부처에서 업무를 담당했던 그다. 현 정부에서도 요직으로 승진한 그와 같은 이가 다큐 가운데서 쉽게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입장을 표명할 수는 없었을 테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설익은 질문을 내어놓는 딸이자 감독 남아름과 그 앞에 앉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아버지이자 국가공무원 남형기의 대면은 관객을 이 영화 앞에 붙들어 놓는 가장 주효하고 효과적 장치로 기능한다. 만약 이것이 아니었다면 영화는 그저 어머니와 딸 사이로 이어지는 페미니즘의 이야기라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홈비디오 쯤이 되지 않았을까.

2024 독립영화 쇼케이스 219회 상영 뒤 남아름은 아버지와 관련한 사연을 몇 가지 더 풀어놨다. 남아름은 "상영 전 가편집본을 보여주고 싶다고 (아버지께) 말했는데 (아버지가) 자기가 보면 검열이 되는 거고 검열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며 "작년 영화제에서 처음 보시고 나서 해프닝이 조금 있었고, 자기는 이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피드백이 있었다"고 전했다. 남 감독은 이어 "어쨌든 아빠를 설득하는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며 "처음엔 세월호 이야기도 없었고 마주 앉아서 인터뷰를 하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편해 하는 아버지를 영화 가운데 주인공 격으로 세운 이유가 무엇일까. 남아름은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빠가 남겨 놓은 테이프들과 20대에 기자를 하고 싶었다는 마음이, 그 근본적인 무언가가 마음에 있다는 걸 놓아 버리고 싶지 않았다"며 "아빠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어야지 영화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끌어내지 못하면 감독으로 역량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결국 침묵이 최선이지 않았나 한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애국소녀 남아름 남형기 변현주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