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다섯 번째 방>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다큐멘터리의 시작과 함께 감독의 가족이 살고 있는 이층집 모습이 천천히 그려진다. 50년도 넘은 이 집에서 아빠도 자랐고, 감독 자신도 성장했다. 외부의 전경에 이어 곧 내부의 공간을 둘러보는 카메라에는 작은 방 두 개와 큰 방 하나가 차례로 담긴다. 감독이자 화자인 찬영의 부모가 20년이 넘게 지내며 두 딸과 아들을 키운 작은 방과 성인이 되며 집을 떠난 두 누나 대신 집에 남은 남동생 진호의 작은방,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머물며 세월을 쌓아온 가장 큰 방의 모습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 방은 할머니의 것이 됐다.
아빠는 한때 잘나가는 소파 집 사장이었다. 소파 집이 망한 뒤에는 가끔 집에서 소파를 만들고 있다. 담뱃값 만 원이 없어 아내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온전히 빌붙어 살기엔 자존심이 상하는 구석이 있다. 찬영의 엄마가 가장이 되며 경제력을 쥐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프리랜서 심리상담가로 활동하며 가족들을 보살펴왔다. 할머니는 그런 엄마에게 큰방을 내어주시고 2층으로 올라가셨고, 엄마는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방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자신의 방을 찾고 있다. 다섯 번째 방이다.
다큐멘터리 <다섯 번째 방>을 연출한 전찬영 감독은 이미 지난 두 편의 다큐멘터리 <바보아빠>(2013)와 <집 속의 집 속의 집>(2017)을 통해 가족의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고백한 바 있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우선이고, 언제나 자신밖에 모르면서,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했던 아빠라는 존재는 감독 자신의 세계를 수축하게 만듦과 동시에 무력하고 두려운 곳으로 만들어갔다. 이번 작품에서는 시선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영역과 범위를 조금 더 넓혀내고 있다. 엄마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그 관계 속에 놓여 있는 아빠의 모습이다.
02.
"왜 내가 밥을 먹었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설거지 안 한 것에만 신경을 쓰는지 난 이해가 안 됐어."
엄마 효정은 바깥에서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도 집에서는 여전히 설거지를 해야 하는, 청소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집안일이 끝나고 나면 항상 집안 어느 구석에서 강의 준비를 하거나 상담 일지를 쓰곤 했다. 어떤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엄마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할머니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했다. 집안일이란 처음부터 엄마의 것이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가장이 아니었을 때도, 가장이 되고 난 후에도.
극 중 엄마의 표현에 따르자면, 아빠에 대한 피 터지는 투쟁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기가 죽어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아빠가 하는 대로만 끌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자신의 선에서 끊어내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할머니가 내어준 1층의 큰방에서 벗어나 2층의 단독 공간으로 옮기고자 하는 생각도 같은 맥락이었다. 틈만 나면 상담 중에도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시도 때도 없이 침범해 오는 다른 가족들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독립적인 공간을 얻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