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아이들의 모습이 담은 작품을 마주하고 나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순수하고 섬세한 감정을 어떻게 옮겨와 담아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2020),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2023)과 같은 영화다. 여러 경로를 통해 포착한 또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각자의 시선으로 프레임 위에서 풀어낸 것임을 안다. 이제는 흐릿해져 버린 어린 시절의 마음과 모습을 선명하게 어떻게 이토록 잘 그려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시간을 되돌아갈 수 있는 비밀 장치가 이들에게는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정선 감독의 영화 <장기자랑>(2023) 역시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다. 영화는 어린 시절 찍어 둔 비디오 속 자신의 장기 자랑 모습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잘하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았던 개인기를 왜 잘할 때까지 연습해야 했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박수치며 환호하던 관객석의 부모를 위해서였을까. 영상 속에 남아 있는 무대 위 어린아이는 하기 싫은 표정으로 가득했다.
이 작품은 그런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잘하지 못하는데 왜 자랑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 지금 무대에 오르는 일보다는 아직 매듭짓지 못한 일을 먼저 정리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
02.
"너 장기 자랑할 거 정했어?"
연후(김건우 분)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어렵다. 특별히 잘하는 일이 없어서다. 협동을 요구하는 체육 시간은 특히 더 그랬다. 의욕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는 그를 친구들이 수군대며 피하고 놀리는 건 예사다. 연후가 관심이 있는 건 오로지 개구리. 쉬는 시간마다 수조 안의 개구리를 지켜보며 혼자 시간을 보낸다. 그런 그에게 곧 다가오는 학예회는 큰 고민이 된다. 벌써 무리를 정해 연습을 시작한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연후 혼자서만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 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때, 반장 민지(이가은 분)가 먼저 손을 내민다. 멜로디언 연주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이다.
쉬는 시간마다 모여 연습에 몰두하는 아이들. 이들 사이에는 약간의 경쟁심도 생기는 것 같다.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처음에는 민지도 연후에게 열었던 자신의 마음이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연후는 이번에도 멜로디언이 고장 났다는 이유로 연습을 미루려고만 한다. 부족한 자신감이 행동을 지연하고 그만큼의 시간을 벌기 위한 변명이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자랑해야 한다는 것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입장이 다툼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감독이 포착해 내는 것은 연후의 마음만이 아니다. 민지의 선의 또한 중요하게 다뤄진다. 멜로디언을 연습하는 일로 다투게 되기는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함께 나아가기 위해 손을 내미는 모습은 영화 속 인물 사이에서 의미적으로 활용된다. 아직 어려서 그 방법이 다소 서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해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금방 등을 돌리는 어른들의 사정에 비하면 순수하고도 따뜻한 행위다. 그리고 이 행동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민지가 연후로부터 다시 되돌려받는 형태로 개인의 성장과 관계의 발전을 도모하는 장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