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의 탐구> 스틸컷
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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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볼 때, 성적, 지적 매력을 완전히 양분하고 있는 두 인물 사이에서 소피아는 스스로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는 도구처럼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해당 인물이 철학 교수라는 설정에 기대어 플라톤을 시작으로 쇼펜하우어와 스피노자를 지나 벨 훅스로 이어지는 사랑에 대한 각각의 관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극의 특정 지점마다 배치된 철학자 및 작가들이 바라보는 사랑에 대한 관점은 그가 처한 상황과 사랑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오버랩되며 영화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레이어를 완성해 낸다.
가령, 가장 먼저 등장하는 플라톤의 욕망과 결핍에 대한 관점은 실뱅의 등장과 함께 소피아의 내면에 발현되는 욕망과 연결되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벨 훅스의 '사랑은 사랑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라는 관점은 마지막 선택과 연결된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의 사랑에 대한 관점이 극 중 인물들의 내러티브를 매듭짓기 위한 용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두고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하고, 어느 한 개인의 서사 속에서도 그 사랑의 가치가 완전히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는 이유는 전복에 있다.
영화의 처음에서 주장되던 '사랑이 유일한 보편적 가치'라던 문구를 해체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랑의 한쪽에만 기대어 안정된 삶을 이어왔던 인물이 또 다른 사랑의 면모를 만나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대상을 탐구하는 일이 해체하고 분해하여 면밀히 관찰한 뒤에 다시 재조립해 가는 과정임을 상기할 때,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을 탐구하는 과정'에 있어 해체란 반드시 필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해체 이후의 재조립을 완성적으로 해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의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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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교수로 위대한 인물들의 사랑에 대한 관점과 논의를 강의하는 소피아가 이 문제에 휘말리게 되는 것에는 학문으로서의 지성과 실제 경험 사이의 간극에 대한 성찰도 내포되어 있다. 소피아는 교수로서 자신의 위치와 지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인물이다. 처음 자비에와의 관계에서 육체적 사랑을 일부 포기하면서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뱅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지성과 욕망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점차 깨닫게 된다. 자비에를 외면하는 과정과 실뱅과의 유대감이 증가하는 과정 사이에서 욕망이 이성을 압도하는 일의 결과를 직접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특히, 인물의 숏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주밍과 프레임의 분절, 반영 등을 통해 소피아라는 인물이 욕망 속으로 휩쓸려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감독의 연출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물도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지성의 영역에서는 '진정한 사랑과 사랑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선택으로 인한 관계의 균열'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현실이라는 것이 이성적 추론의 영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론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은 그런 쉽고 간단한 방법에도 저항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이 영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