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자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살아온 시대, 겪어온 사연들이 그대로 지각이며 사고의 틀을 이루는 탓이다. 왕정이 굳건한 시대엔 제일의 가치이던 충성이, 오늘날 시민사회에선 미덕 취급도 받지 못한다. 적극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게 사내다움의 표상인 문화권에선 하나하나 여성의 동의를 구하여 전진하는 연애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가 다른 이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제 것만이 옳다 여기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가.
서로 달리 사고하는 두 사람이 함께 공존하기 위하여선 선을 넘지 않는 존중이 필수적이다. 나는 너와 달리 생각하지만 너의 다름을 존중한다고, 상대의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공존의 시작이다. 이해가 아닌 무조건적 인정, 진정한 존중에는 이르지 못하는 용인이다.
그러나 때로는 다름을 인정하기 어렵다. 경계란 가까운 관계일수록 쉽게 넘게 되고는 하는 것이 아닌가. 가족이 바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