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의 한 장면
MBC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떤가요.
"해외 출장도 길게 다녀왔고, 국내 취재한 부분도 많았는데 못 담은 것들이 많아 아쉽습니다. 사도 광산 보도는 많이 나왔는데 우리에겐 낯선 곳이라 직접 현장에 가서 보고 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모습을 꼼꼼하게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 사도 광산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저도 사도 광산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거든요. 그래서 예전 뉴스들을 찬찬히 보며 협상의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니, 우리가 이렇게까지 양보하면서 진행할 일인가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제일 처음에 만난 분이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님이셨어요. 이슈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을 먼저 만나서 객관적으로 얘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취재원 중에서 정혜경 박사님의 자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도 광산에 대해서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깊이 있게 접근한 연구자세요. 그래서 그분이 쓰신 책부터 먼저 읽기 시작했고, 그다음 사도 광산과 관련된 지난 언론 보도들을 쭉 보면서 공부했습니다."
- 사도 광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면요.
"사도 광산은 일본 최대의 금광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한때는 전 세계 금의 10%를 차지할 정도였다지만, 우리에겐 아픈 역사의 현장이고요. 미쓰비시 광업이 태평양 전쟁 때 전쟁 물자용 광물을 캐려고 1500여 명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가서 일을 시켰던 곳이죠."
- 사도 광산이 왜 문화유산일까요.
"기술적인 부분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에도시대에 금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어떤 독자적인 기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라고 해서 등재를 했다고 들었어요. 우리에게는 어두운 역사의 유산이죠. 그런데 언제나 밝은 역사를 가진 곳만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예전에 나치의 집단 학살이 있던 폴란드 아우슈비츠도 가봤는데요, 거기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잖아요. '부(負)의 유산'도 역사니까 그걸 솔직하게 기록해서 후세에 이런 것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교훈을 남기는 것도 의미 있는 유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지금 사도 광산 같은 경우는 그런 게 아니죠. 어두운 역사를 교묘하게 가렸고, 사도 광산 본 유적지의 경우는 아예 현지서는 '사도 금산'이라고 부르는데, 정말로 금과 관련된 대표적인 관광지 느낌이었어요."
- 방송을 보니 등재를 에도시대로 한정했더라고요.
"에도시대만 한정해서 등재했다는 게 사실상 꼼수 등재라고 봐야 하는데요. 전체 역사 기간을 다 선정하면 당연히 한국의 반발이 있을 거니까 일제강점기를 제외한 거예요. 그렇다고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시기를 제한해서 등재 하는 게 굉장히 웃긴 거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유네스코에서도 에도 시대에 한정해서 등재 하더라도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는 권고를 내리거든요."
- 직접 사도 광산에 가보니 어땠나요.
"사실 많이 화가 났어요. 본 유적지엔 2개의 갱도가 있고, 하나는 에도시대 갱도 하나는 메이지 이후의 갱도로 조선인 강제 노동자가 일했던 걸로 추정되는 곳이었는데 너무 비교되는 느낌이었어요. 이를테면, 에도시대 갱도는 관광객이 조금 더 많았고, 작업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한 마네킹들도 잘 전시돼 있었어요.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일했던 메이지 이후의 도유갱도 같은 경우엔 마네킹이 딱 하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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