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스틸컷
(주)디오시네마
03.
앞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프랜이 경험하는 자발적인 단절과 맞닿아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감각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 대신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자신만의 공간', 내면의 상상에 빠지는 순간은 꽤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것이 과도한 외부 자극으로부터의 회복인지, 과거 어떤 사건으로부터의 회피인지에 대해서 영화가 알려주는 것은 없지만 이 순간은 꽤 꾸준한 빈도로 발현된다. 영화는 이 상상을 울창한 숲 한 가운데의 잘 마련된 공터나, 고요한 해변 모래사장 위의 작은 통나무 쉘터와 같은 공간에 그녀를 홀로 내던지는 것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에의 이미지, 슬픔이나 공포, 어떤 기괴함과 같은 감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녀의 상상 혹은 꿈속에서 죽음은 그녀가 현실에서 다다르고자 하는 삶의 원형이 가장 잘 정제된 형태로 완성된 모습이다. 고요하고도 단순한, 어떤 순간에는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 장면. 이에 대해 프랜은 영화의 말미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죽음의 감각이라는 것이 단순히 죽음을 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닌 일종의 호기심,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져서라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한글 타이틀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의 죽음은 영화가 말하는 죽음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죽음에 대한 갈망 뒤에 성취하지 못한 사랑이 뒤따르는 것 같은 의미의 타이틀과 달리, 프랜이 생각하는 죽음에는 환기와 삶에 대한 역설이 담겨 있어서다. 이 영화에서 죽음이란, 달성해 내야 하는 목표나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자신이 머무는 현재의 자리와 모습에 대한 불안의 반영과도 같다. 자신이 완성해 낸 고립과 새로운 연결고리에 대한 갈망 사이의 딜레마라고 할 수도 있겠다.
04.
영화의 초반부에서 설명되는 인물의 삶이 프랜 스스로가 만든 단절된 상황에 대한 것이라면, 로버트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비춰지는 새로운 모습들, 두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숨은 재능'은 새로운 연결고리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프랜은 로버트의 제안에 처음 보이던 모습과 달리 생각보다 열린 태도를 보인다. 영화관 데이트에 응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에 없던 미소를 보이는 일, 첫 데이트 이후 처음으로 아침 인사를 먼저 보내는 모습 등은 그녀가 현재의 삶을 정확히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경계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자인 삶에서는 매일 같은 간편식만 먹으면서 게를 손질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참여하게 된 마피아 게임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역시 그의 삶이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프랜은 여전히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거나 보여주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모든 면을 재미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으며 잃었던 거리감을 되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