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란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전, 란>, 넷플릭스 영화다.
넷플릭스(부산영화제 제공)
역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중 최고 흥행작은 2009년 14회에 상영됐던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였다. 2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례적인 흥행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당시 상업영화의 개막작 등장을 두고 일각에선 '독립예술영화를 중심에 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체성을 망각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중성을 너무 내세우면 예술성이 바탕인 독립예술영화가 밀려날 수밖에 없어 영화제 정체성이나 가치를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올해 영화제를 둘러싸고는 이런 기조마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막작으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작품인 넷플릭스 <전, 란>이 선정되면서 영화계의 불만 섞인 비판이 쏟아진 것. 상영작으로 선정한 게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개막작으로 부적합하다는 지적이다(관련기사 :
OTT 상업영화에 BTS까지... 문턱 낮춘 부산국제영화제 https://omn.kr/2a1pk).
부산지역 제작사 케이드래곤 김희영 대표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 넷플릭스 영화라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며 "실망스럽다"고 공개 저격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운영위원인 블루문파크 조윤정 대표도 "개인적으로 나름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잘 적응하고 융통성도 있는 사람이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은 심히 슬프다"며 "지금 이 시기에 부산국제영화제마저 그래야 했나"고 유감을 나타냈다.
"OTT를 굳이 개막작으로 내세워야 했나"
앞서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박도신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은 "역대 개막작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로, OTT 영화라는 점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았고 작품 자체로 판단했다"며 "관객이 얼마나 즐길 수 있을지가 중요 기준이었기에 넷플릭스라고 제외한다는 건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조영각 PD는 "누가 제외하라고 했나? 개막작이라는 상징성으로 안 맞는 것 아니냐?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가 아니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다른 섹션에서 상영하면 되는 작품인데, 대중이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가 아닌 OTT 작품을 굳이 개막작으로 앞세울 필요는 없었다는 것.
조 PD는 또 "부산국제영화제가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냥 여러 영화제 중 하나일 뿐이라는 징후다'라며 "이제 독립영화인들이 프리미어 상영을 위해 무작정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윤정 대표는 "지금 영화산업이 상황이 무척 어려운데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제외하고 넷플릭스 작품을 개막작으로 내세우는 건 문제가 있다"면서 "독립예술영화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런 식으로 가면 몇 년 안에 영화제 위상이 상당히 떨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신과 함께>,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다수의 흥행 상업영화를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선정은 존중한다"면서도 "대중 친화적인 것도 생각해야겠지만 아무리 대중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영화제만큼은 영화의 다른 의미, 가치를 존중하는 그걸 전파하는 게 자존심이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장건재 감독 <한국이 싫어서>는 현실을 녹여낸 영화로 지난 8월 28일 개봉했으나, 누적 관객은 3일 현재 4만 6명 명 정도다. 독립영화로서 괜찮은 성적이지만 상영영화의 흥행성과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역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독립예술영화 가운데 한국영화였던 장률 감독 <춘몽>(16회, 2016년), 신수원 감독 <유리정원>(17회, 2017년), 윤재호 감독 <뷰티플 데이즈>(2018년) 등도 상업성이 있으나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었다.
개·폐막작의 경우 상업영화 선정에 대한 비판이 간혹 나오곤 했다. 2018년 폐막작이었던 홍콩영화 <엽문외전>을 두고 예술성이 떨어지는 대중적인 상업영화를 폐막작으로 선정했다는 일부 평가위원들의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그만큼 개·폐막작의 상징성을 중요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