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플루언서’ 스틸컷
넷플릭스
이처럼 미션들은 제작진이 정의한 인플루언서 자격 조건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으로 소비된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일부 출연진은 미션이 나올 때마다 제작진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돌파하려 애쓴다. 영향력이나 관심을 모으는 인플루언서로서의 능력보다 잔머리나 친화력, 문제 해석 같은 출연자 개인의 능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자신이 해온 것들을 증명하는 것으로 미션을 돌파하는 출연자는 극소수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제작진이 미치는 영향력은 커진다. 출연자의 탈락과 합격 여부는 운처럼 느껴진다. 인플루언서들이 어떤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올랐는지, 이들의 진짜 매력을 무엇인지 드러내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의 본 의도는 점점 잊힌다.
가만히 보면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도 등장한다. 온라인 라이브 방송으로 실시간 시청자 수를 대결하는 미션과, 현장 라이브 무대에서 더 많은 관객을 모으는 마지막 미션을 보면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떠올리지 않긴 힘들다. 과거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만든 제작진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재활용한 확장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시간 방송으로 인플루언서가 된 출연자도 있고, 영향력이 여전히 큰 것도 사실이다. 채널을 옮겨가는 시청자의 실시간 반응을 실제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도도 인상적이다.
과거에 머물고 있는 제작진
정작 <더 인플루언서>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첫 방송된 2015년과 2024년의 시간차를 반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당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실시간 방송의 매력을 주말 예능으로 가져온 파격이 있었다. 텔레비전 시대의 종결을 예감한 TV 제작진의 막막한 심정이 담은 마지막 블랙코미디처럼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 시청자는 TV 앞을 떠나 OTT와 유튜브, SNS로 이동했다. 모두가 같은 방송을 봤던 과거 시청자들은 이제 좋아하는 플랫폼에서 좋아하는 인플루언서들의 모습을 본다. 대중 매체가 사라진 시대에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인플루언서들을 상대로 라이브 시청률 경쟁이나 화보 촬영 등 획일화된 미션을 주는 건 인플루언서의 인기 원인과 현상의 본질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모습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