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선생>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2023년 여름, 대한민국 각지에서 교사들이 연달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7월, 서이초 사건으로 서울의 한 초임 교사가 교실에서 세상을 떠난 이후 두 달 사이에만 4명의 교사가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 배경에는 학부모의 지나친 요구와 간섭, 수업 외 과도한 업무 등의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한 현실이 있었다. 이에 전국의 교사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행동을 시작했다. 그해 10월까지만 10차례 이상의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매회 수만 명 이상, 많게는 30만 명까지 모여 사망 교사들을 추모하고 교권을 보장한 대책을 요구했다.
서울의 한 사립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오채림 선생님은 그보다 조금 이른, 2023년 1월에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직면한 문제는 거의 비슷했다. 이번에는 정식 교사가 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직접적인 협박까지 있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관심이 학교로 쏠리기 6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 시간 동안 한 선생님의 죽음이 알려지지도 못하고 조용히 흩어졌던 셈이다. 전국의 애도가 이어졌던 7월의 사건 이전부터 교권의 위협과 관련한 문제가 수면 아래에서 많은 선생님들의 숨통을 조여왔음이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EBS 이규대 감독의 시선은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로부터 이어진 연장선 위의 또 다른 사건을 화두로 가져오면서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선생>이 서이초 사건을 시작으로 촉발된 대한민국 교육의 민낯과 함께 그 시작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오채림 선생님의 이야기를 반추하는 이유다. 남겨진 유가족과 주변 인물들, 교육 전문가들에 이르는 다양한 지점에 서 있는 이들의 인터뷰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는 한 인물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한다.
02.
"참고 기다리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시간을 참아내야 하는 거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오채림 선생님을 대신해 다큐멘터리의 전반에 내세워지는 이는 아버지 오재근 씨다. 25년가량 도자기업을 이어온 장인이자 예술가인 그는 딸과 이별하고 15개월이 지나는 동안 가마에 불을 피우지 못했다. 딸을 기억하는 것, 기억하지 않는 것 모두 자신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아노미 속에서 부유하듯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기간이었다. 그런 순간들을 회고하며 말을 잇는 그의 모습 뒤로 겨우 다시 불을 일으키는 가마의 모습이 비친다. 그리고 리와인드(Rewind). 과거의 장면을 향해가는 몇몇 장면들의 리와인드 신은 이제 미래의 시점에 다다라 과거의 사실을 조금씩 잊어가는 우리를 그 시점으로 다시 되돌려 놓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숱한 과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의 섭리가 도자기를 굽는 일과 꼭 닮아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자신의 손으로 빚고 완성했으니 부모의 마음이 되고 마는 것 역시 작업물의 결과와 자녀에게 느끼게 되는 공통적인 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상하지 못한 딸의 상실은 불을 약하게 때거나 불을 강하게 때서 통째로 버리게 된 가마의 경우에 속했다. 오랜 시간 숙련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힘과 경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사고와도 같은 일. 일부러라도 예상해 본 적은 없는 사건. 과거이지만 여전히 현재에 놓여있는 기억에 해당한다.
가족의 삶은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딸의 친구도 하나 부르지 못하고 꽃 한 송이 헌화하지도 못한 채 그냥 보내야 했던 딸로 인해 슬픔에 잠겨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던 때. 서이초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돌아오지 못할 선택을 해야만 했던 선생님에게는 정말로 미안한 말이지만, 오재근씨는 일면 고마운 마음이 일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가족들끼리 묻고 가려고 했던 사건을 서이초의 피해자 선생님이 선구자 역할을 하며 함께 수면 위로 올려준 것만 같아서다. 이후 서이초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열린 서울시교육청-교직 3단체 공동 기자회견장(2023년 7월 24일)에 참석한 오채림 선생님의 아버지는 딸의 죽음도 함께 조사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