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완벽한 하루>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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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들의 곁에서 모든 상황을 보조하는 의료진들이 다학제(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해결책을 마련하는 접근법) 진료를 통해 긴밀히 서로 협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성직자와 일반적인 생활을 돕는 이들까지 모두 포함된 다학제의 구성원들은 주기적인 회의를 거쳐 환자와 가족들 모두에 대한 상황과 의견을 교류한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상황을 한 사람이 모두 전담할 수는 없으니 그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돌아가면서 확인하고자 함이다. 물리적 치료와 심리적 안정을 위한 활동을 구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은 가늠하기 힘들다. 평소에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내려놓은 듯이, 이제는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나쁜 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환자들도 정작 특정한 상황을 마주하면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잦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음이 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여서다.
삶이라는 것이 포기한다고 해서 쉽게 포기되는 것도 아니고, 죽음 또한 오롯이 마주한다고 해서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신체적 관리만큼이나 심리적 관리가 중요하게 생각돼야 하는 이유다.
04.
환자 다음으로 가장 어려움에 놓이는 것은 역시 보호자다. 환자의 보호자로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들은 호스피스 병동을 바로 찾지 않는다. 그 의미는 보호자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을 환자를 돌보는 역할을 하며 지내왔다는 뜻이다. '보호자 소진'이라는 말은 그런 보호자들의 상태를 보여주는, 현실적이면서도 안타까운 용어다. 물론 보호자들이 소진돼 환자들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오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말기암 환자들의 더 나아질 수 없는 상태가 계기가 된다.
말기암 환자는 치료를 받아도 고통만 다시 시작될 뿐인 경우가 많다. 환자의 가족들도 방법만 있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지만, 결국 반복되는 고통의 과정을 지켜볼 수 없어 호스피스 병동을 선택하게 된다.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서다.
무너진 마음으로 인한 비명 소리,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 먹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소리 등 암환자들의 절규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아픔이다. 되레 호스피스 병동에서 완화 관리를 받는 동안 환자와 가족들은 전에 하지 못했던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환자에게는 물론 보호자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