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산불 전망대 위에서>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전 세계 산불 발생 빈도와 피해 규모는 매년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캐나다도 예외는 아니다. 온대 침/활엽수림부터 한대림과 온대 초원까지 다양한 생태를 가진 나라. 특히 대륙 서부에 위치한 로키 산맥을 중심으로 밴프와 요호, 재스퍼의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산악지대에서는 종종 대형 산불이 발생하곤 한다. 오랜 시간 축적된 산림자원을 훼손하고 인근 주민은 물론 야생동물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거대한 산불 앞에서 인간은 그저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오늘날 캐나다 전역에서 110여 개의 산불 감시탑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설치된 30미터 높이의 감시탑에는 지정된 감시원이 1년에 최대 6개월까지 머물며 통계적으로 40%의 산불을 조기 발견해 왔다. 떨어지는 벼락이나 뇌우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화재는 물론 방화나 실화에 의해 시작되는 화마의 첫 순간까지 모든 화재의 시발점이 이들의 레이더망 아래에 놓여 있다.
이 작품 <산불 전망대 위에서>에는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깊은 숲 속 홀로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레인저(Ranger), 산불 감시원들의 삶이 녹아있다. 감시탑의 역할과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고 있지만, 토바 크렌츠먼(Tova Krentzman) 감독이 더 관심을 갖는 쪽은 감시원인 사람의 이야기다. 사회와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전망대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경험과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02.
작품 속 인물인 브라이언, 마커스, 킴, 로버트가 처음 산불 감시원이 되기로 한 계기는 생각보다 평범하다. 어린 시절부터 높은 곳을 좋아했거나, 산 위의 탑에서 보내는 시간이 흥미롭게 여겨졌거나, 우연한 기회에 감시원으로 일하던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머물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들 모두 처음에는 10년도 넘는 세월을 산림을 돌보고 감시하는 일에 자신의 생을 받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들의 유일한 문제는 대부분 독신이라는 점이다. 자의에 의한 선택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포기하거나 내려놓아야 하는 지점의 문제로 여겨진다. 1년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도시로부터 떨어져 산꼭대기의 외딴곳에서 보내야 하기에 이를 이해해 주거나 함께 할만한 인연을 만나기 어려워서다. 보통 이 직업을 시작하게 되는 나이가 30대 중후반, 40대라는 점이 더욱 발목을 잡는다.
어려운 부분만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인생의 동반자를 찾고 싶지만 감시탑이 주는 자유와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다. 정해진 삶의 루틴이 있는듯한 포멀한 인생의 형태가 이해되지 않는 경우에는 이 삶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때로 인간으로부터 조금의 혐오를 느끼게 될 때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감시탑의 고요함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장기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고독'을 견뎌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제 아무리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던 사람도 예외는 없다. 애초에 내재되어 있었을 인간의 보편적 고독이 점점 더 부풀어오는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