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양지뜸> 스틸 이미지
블루필름웍스
하지만 사드가 마을 주민들에게 아무 허락도 구하지 않고 강행된 것처럼, 한동안 소강상태로 대치하던 국면이 바뀌기 시작한다. 감독이 이러다 다큐멘터리 원래 기획대로 못 만들 것 같다는 고민 끝에 3년간의 소성리 생활을 마무리하고 떠나자마자 2021년 5월부터 마을회관 앞 도로 구간, '양지뜸'을 주 2회 군경이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수백, 수천의 인원이 길목을 가로막고 주민들을 밀어내며 점령군처럼 들이닥친다. 2022년 2월부터는 통제횟수가 주 3회로 증강된다. 육상도로 확보는 사드가 배치된 기지 일대 수송로와 장비 반입 통로를 영구화하기 위함이다. 충돌을 회피할 겸 헬기로 수송하려니 워낙 번거롭던 참이다. 즉 영구주둔기지로의 길이다.
다시 주민과 연대 단위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전원일기 보는 것 같던 풍경이 익숙한 투쟁의 현장으로 변모한다. 대책회의와 집회 장면으로 마치 주제가 바뀐 양, 사실은 원래 기획 의도대로 돌아온 셈이다. 다시금 조용하던 마을에 전운이 감돌고, 수차례 물리적 충돌이 화면을 채운다. 보고 싶지 않았던,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들어찬다.
항의하다 질질 끌려나가는 노인들, 절규하며 항변하는 주민들, 이를 외면한 채 침묵과 무시로 일관하는 경력, 신기해서 구경하는지 조롱하는지 알 수 없는 미군의 풍경이 교차한다. 바깥세상에선 이미 다 끝난 일이라 치부하며 망각하고 있지만, 소성리의 싸움은 현재진행 중이다. 그리고 미래로 이어질 테다.
예전에 등장한 사드 배경 영화들이 특정한 투쟁의 단락을 정리하는 시의성과 중간정리에 충실한 압축을 선보였다면, <양지뜸>은 '일상물'의 호흡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시기 구분처럼 화면 중간에 표기되는 '1', '2', '3'은 중간에 깜빡하면 흐름을 놓치기 쉬운 (상대적으로) 조용하던 시기 기록을 감독이 소성리에 체류하던 연간 단위로 구분하는 분기점으로 기능한다.
명백한 국면 전환으로 판단된 특정 시기는 해설처럼 검은 화면 배경에 자막으로 언급되지만, 엄격한 카테고리 구분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조금씩 고령으로 유명을 달리해 가면서도 숨을 쉬는 한 절대 굴복하지 않을 주민들의 굳센 의지, 그리고 의지의 바탕이 된 장구한 인생사가 쐐기처럼 뇌리에 새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지뜸>은 급박한 투쟁 국면에서 '미디어'를 무기로 활용하는 데 즉시 전력감으로 투입하기엔 다소 거리감이 있다. 그 대신 어느 정도 소성리의 사정을 인지하고 있긴 한데, 요즘 한동안 관심을 돌리지 못하던 이들에겐 제비가 소식을 전하듯 반가운 영상편지로 활용되기에 썩 무난한 내용물이다.
지금도 양지뜸 볕 좋은 길가에서 일상의 싸움을 이어가는 주민들의 안부를 확인하거나, 고인이 된 어르신들을 마음속으로 추모하고픈 이들에게도 괜찮은 선택지가 될 테다. 날씨가 조금 선선해지면 오랜만에 '양지뜸'을 찾을 마음이 생긴다면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의 목표는 관객 동원과는 무관하게 성공을 거뒀다고 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