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땅 아래 사람들>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02.
작품의 시작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언젠가 맞은 폭격으로 인해 철근이 모두 녹아내린 오래된 가게 하나와 가까운 곳으로부터 끊임없이 들려오는 폭격음이다. 소리가 들리자마자 도로 위의 사람들은 일제히 모습을 감춘다. 지하로 숨어 들어가거나 인근의 건물 안으로 몸을 피하는 식이다. 끝나지 않는 러시아의 폭격은 이곳 주민들의 지상의 일상을 모두 빼앗고 삶의 모습마저 모두 바꿔버렸다. 지하의 역사로 내려가 일상을 구하고자 했던 이유다.
모든 주민이 역사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택에 방공호가 마련돼 있는 가족은 여전히 자신들의 집에 머물고 있기도 하다. 땅 아래의 생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다큐멘터리의 중심에 놓인 열두 살 니키타와 가족의 생활 역시 지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생활한 지도 벌써 한 달. 햇빛과 신선한 공기가 부족한데다 생활 패턴이 망가지며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점점 줄어들고 있는 배급도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수프나 빵을 구하기도 힘들어지고 있고, 양동이에 물을 받아 머리만 겨우 감는 날들이 이어진다. 지상의 소식이 먼 타지의 일처럼 전해지는 일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누군가의 집이 포격을 맞아 무너졌다던가, 길을 걷고 있던 이가 파편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들. 현실적이지 않을 정도로 무섭게만 들리던 공습경보와 대피 사이렌도 이제는 무덤덤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주 반복된다.
03.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어른들에게는 견딜 만하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고 있어서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오래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한 아이들은 벌써 나가고 싶어 하고, 지상으로 나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소식보다는 무사히 돌아온 이들의 무용담을 부러워하기 바쁘다. 이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이곳을 떠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하는 걸까.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전장이 어떻게 형성되고 언제 누가 폭격을 맞아 세상을 떠나고 하는 식의 땅 위의 소식을 전해주는 스마트폰만이 아이들에게 작은 위안이 된다.
이 작품에서 아이들이 어른만큼이나 중요한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에서의 차이만 제외하면 동등한 수준의 인격체로 들여다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어른들의 사정이지만 그 과정의 고통과 참혹한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은 피난처에서 아이들이 세상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어른들의 기억과 스마트폰 속의 작은 화면뿐이라는 것이 그 반증이 된다. 차갑고 단단한 쇠붙이, 지하철이 다니던 길 위의 철로와 운행을 멈춘 차량이 유일하게 허락된 놀이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