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 이미지
㈜영화사 오원
대다수 한국의 현대 도시공간은 동시기에 비슷한 경로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겪는 문제 역시 공통되는 분모가 지배적이다. 개별 특수성이 엄연히 있지만, 그런 부분만 빼고 따져볼 때 문제와 대안 역시 크게 차이나지 않는 셈이다.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 가운데 도시의 흥망도 가파른 편이다. 그런 시류와 함께 유지와 보수를 끝없이 진행해야 하는 도시 공간의 특성상 재개발은 필수 요건이 된다. 어느 도시나 재개발을 통한 부흥과 영속을 꿈꾼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를 뒤덮은 모두의 욕망, 부동산 가치 증대가 그런 재개발의 지상목표로 설정되기에, 과거의 시행착오를 성찰하며 개선하기보다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남들이 가는 방향에 늦을까 봐 숨을 몰아쉬며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부동산 가치 증가가 신앙처럼 떠받들어지는 상황에서 도시의 고유한 역사성과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전국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벌어지는 실시간 상황이다.
인천은 서울과 부산에 이은 3위의 대도시인 동시에, 근현대사에서 여러 격변이 일어났던 역사 공간이기도 하다. 부산이나 인천, 군산, 목포 등의 도시는 현재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근현대 시기에 급속하게 팽창하며 수많은 '스펙터클'을 경험한 곳들이다. 특히 인천은 한국 최초의 철도(경의선)와 고속도로(경인고속도로)가 만들어진 곳이자, 지금도 인천국제공항과 항만으로 세계와의 창이 되어주는 공간이다.
그만큼 신문물의 도입 통로이자 원하지 않는 강제 개방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런 기억이 깃든 핵심 공간이 현재 인천광역시의 '원도심'인 과거 제물포항과 중구 일대다. 다큐멘터리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는 해당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구시가지의 역사를 간직하고 미래의 활력으로 삼으려는 이들의 분투를 기록하고 비슷한 고민을 품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려는 목적의식으로 만들어진 작업이다.
인천을 무대로 활동하는 클래식 챔버가 근대 인천이 품은 역사적 에피소드를 차례로 소개하며 공연을 펼치는 장면으로 영화는 개시된다. 관객은 진행자의 해설을 통해 개별 레퍼토리의 제작 의도와 압축된 함의를 인지하며 공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역사책에 실린, 기억이 가물가물 희미해진 근대 한국사의 격동적 사건들이 연이어 소개된다. 최초의 강요된 근대적 조약이 외세의 무력에 의해 체결된 곳이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한국전쟁의 격전이 벌어진 공간의 사연이 절대 평범할 리 없다. 일제의 병탄 야욕과 이에 저항하는 필사적 방어 가운데 자리했던 대한제국 최초의 서양음악 편곡과 러일전쟁 패배에 분개한 러시아의 군가, 그리고 일제강점에 대항하던 독립지사들이 만든 전통과 근대가 어우러진 악곡이 모르고 들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성으로 전달된다.
초반부는 현재 인천 구도심 재개발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의 구도를 풀이하는 데 할애된다.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인 '도시 재개발'이 현재 어떻게 개념화되고 있는지, 재개발의 부정적 면모에 반대하는 이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도시재생'과 어떤 차이인지가 막개발 시도와 저지 운동의 충돌을 상징하는 풍경들과 함께 해설된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도시재생 운동가와 단체 대표들의 증언은 물론, 이웃들이 전부 떠난 재개발 예정구역에서 살벌하게 빨간색으로 건물 벽마다 도배하듯 붙은 '철거'와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 이미지에 파묻혀 살아가는 노부부의 살아온 이야기까지 망라된 해설이 늘어지지 않으면서도 쟁점을 이해하기 쉽게 지원한다. 관 주도로 싹 다 갈아엎은 자리에 새 판을 짜는 일방통행이 '재개발'이라면, 핀셋으로 섬세하게 기존 공간의 한계만 치료하는 방식이 '재생'이라는 구도다.
구도심이란 캔버스에 미래를 그리는 이들과 영감이 되는 사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