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스틸컷
영화사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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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로봇 드림>은 미국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사라 바론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다. 스페인의 영화감독인 파블로 베르헤르는 1980년대의 뉴욕시를 배경으로 두 존재를 옮긴 채로 관계의 속성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도그와 로봇이 나누는 우정과 사랑, 서로에 대한 이해가 그 중심에 있다. 불가항력적인 이별 속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대상을 연결하는 것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문화들이다. 국제 무역센터의 두 건물과 브루클린 다리 등을 배경으로 한 뉴욕시 전경은 물론, 이제는 사라져 버린 유선 전화와 라디오, 롤러스케이트 등의 물성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감정적 관계에 의존했던 때의 감성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프레임 속에 놓이게 되는 대상을 사람이 아닌 동물로 그려내고 있는 부분도 의미가 크다. 극 중의 뉴욕시를 동물만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바꿔놓은 것은 이 작품이 무성 영화의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장황한 대사가 놓이는 대신 의인화된 동물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그들의 감정이 표현되고 따르게 되는 과정은 이해가 아닌 공감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각각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이야기 속에서 활용되고 있는 부분은 보편적이지만 적절한 자리에서 용이하게 활용된다. 가령, 도그라는 캐릭터는 모티브가 되는 개가 가진 발달된 청각과 후각으로 이야기의 중요한 자리를 이끌어 나간다.
03.
영화는 '로봇 드림(Robot Dreams)'이라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봇의 몇 번의 중요한 꿈, 상상을 따라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시작은 해변을 가른 철조망에 의해 이별하게 되면서부터다. (두 인물이 함께일 때는 꿈을 꾸는 장면이 놓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세 번의 상상이다. 바다를 통해 해변에 상륙한 토끼와 관련한 꿈이 한 번, 처음 내리는 눈을 보고 자신의 몸이 얼어가는지도 모르고 꾸는 꿈이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거리를 걷고 있는 도그를 우연히 목격한 뒤에 꾸는 꿈까지 총 세 번.
이야기 속에서 로봇의 꿈은 여러 가지 역할을 부여받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황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가는 심리를 표현하는 일이다. 이는 극 중에 대사가 놓이지 않는 극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대사를 활용하는 대신 꿈의 장면으로 대신 놓는 것이다. 처음 장면의 꿈에서는 기다림이 주는 행복한 감정만이 놓인다. 혼자가 되고 나서 처음 꾸는 꿈이기도 하고, 헤어짐으로부터 아직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두 번째 꿈에서도 그 행복의 감정은 이어진다. 가장 행복했던 지난여름의 노래 'September'를 통해서다. 하지만 이번 꿈에서는 오랜 기다림 끝에 피어오르는 두려움이 반영된다. 다른 로봇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도그의 모습이 따라붙는 이유다. 이제 마지막 꿈속에는 커다란 기대와 바람이 놓인다. 지체 없이 뛰쳐나가 도그와 재회의 포옹을 나누는 일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이 꿈들은 현실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면서 그 의미를 더욱 증폭시킨다. 꿈속에서는 로봇을 도와줬던 토끼들이 현실에서는 다리를 잘라 자신들의 배를 수리하는 용도로 쓰고, 행복한 시절의 노래를 부르며 도그의 집으로 향했던 상상 속 자신의 모습과는 달리 두 번째 꿈 바깥에는 쏟아지는 눈 속에서 얼어가는 비정한 현실이 놓인다. 마지막 장면도 다르지 않다. 도그를 발견하고 바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과 달리 로봇은 되려 자신의 모습이 들킬까 두려워하며 제 모습을 감춘다. 이렇게 서로 상응하는 꿈과 현실의 장면은 오와 열 양쪽 모두에서 각각의 의미를 지니며 베틀의 날실과 씨실이 피륙을 짜내듯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