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에 개봉해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는 영화 시작과 함께 조커(고 히스 레저 분)가 이끄는 강도단이 은행을 터는 장면이 나온다. 초반만 하더라도 호흡이 잘 맞던 강도단은 욕심 때문에 서로를 죽이기 시작하는데 사실 이는 모두 조커의 계획이었다. 조커는 은행장의 입에 폭탄을 물리고 가면을 벗어 얼굴을 드러내는데 이는 히어로 영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등장신 중 하나가 됐다.
한국영화 중에는 역시 2013년에 개봉했던 한재림 감독의 <관상>에서 나오는 수양대군 등장신을 빼놓을 수 없다. 송강호, 김혜수 등과 함께 주연배우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도 영화시작 50분이 넘도록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았던 이정재는 무려 57분 만에 웅장한 음악과 함께 수양대군으로 완벽하게 빙의해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등장했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만으로도 관객들은 <관상>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물론 캐릭터의 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감독들도 있지만 많은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 속에서 주요 캐릭터들이 어떤 식으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지 많은 고민을 한다. 지난 2004년에 개봉한 김태균 감독의 <늑대의 유혹>은 잘 만든 등장신 하나로 인해 20년 동안 관객들에게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