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12월21일 <해운대>와 <국제시장>으로 '쌍천만 감독'에 등극한 윤제균 감독의 신작 <영웅>이 개봉했다. <영웅>은 한국에서 흔치 않은 뮤지컬 영화를 표방한 작품이었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개촬영 후 개봉시기가 2년 이상 미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흥행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윤제균 감독의 신작인 데다가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난 후 맞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하면서 관객들의 많은 기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내심 '3연속 천만 관객'을 기대했던 <영웅>은 전국 327만 관객으로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물론 <영웅>이 아쉬운 성적을 남긴 원인에는 웃음과 감동을 모두 잡으려 했던 윤제균 감독의 무리한 욕심도 있었지만 불리한 대진운도 크게 작용했다. 바로 <영웅>보다 일주일 먼저 개봉해 전국 1080만 관객을 동원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물의 길>이 극장가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재미와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어떤 영화와 맞붙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충분히 잘 만들고 재미 있는 영화임에도 엄청난 대작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면서 만족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기 때문이다. 2014년 7월에 개봉해 역대 오프닝 최고기록을 세우고도 일주일 후에 개봉한 <명량>에 가려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기는데 그쳤던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도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영화였다.
 
 <군도>는 개봉 첫날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고도 손익분기점을 갓 넘는데 그쳤다.
<군도>는 개봉 첫날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고도 손익분기점을 갓 넘는데 그쳤다.(주)쇼박스
 
긴 무명생활 끝에 '연기본좌' 등극

경북 봉화군에서 태어난 이성민은 여느 배우들처럼 한창시절 연극을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고 대구에서 극단생활을 하면서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이성민은 2002년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상경해 극단 차이무에 들어가 연극과 영화의 단역으로 활동하며 힘들게 배우생활을 이어갔다. 이성민은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김종찬의 친구이자 밀양시내 중국집의 주방장 역으로 출연했다.

2010년 드라마 <파스타>에서 레스토랑의 바지사장 설준석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린 이성민은 <글로리아>,<내 마음이 들리니>,<브레인> 등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그리고 2012년 실질적인 첫 주연작이었던 의학드라마 <골든타임>에서 외상전문의 최인혁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천만 관객을 모았던 2013년 영화 <변호인>에서 연기했던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의 친구 이윤택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성민은 2014년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백성의 편에 선 의적떼 지리산 추설의 우두머리 대호 역을 맡아 카리스마를 뽐냈다. 그리고 <군도>에서 보여준 이성민의 듬직한 연기는 같은 해 가을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 과장으로 이어졌다. 이후 영화 <검사외전>과 <보안관> 등에 출연하면서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 잡은 이성민은 2018년 영화 <공작>으로 백상예술대상과 대종상을 비롯해 6개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이성민은 2020년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기해 크게 닮지 않은 외모에도 엄청난 열연을 통해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2021년에는 <남산의 부장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가족드라마 <기적>에 출연해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성민은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악인과 인간적인 면모가 공존하는 입체적인 캐릭터 강원중 부장판사를 연기했다.

이성민은 2022년11월에 방송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그룹의 진양철 회장 역을 맡아 엄청난 열연을 펼치며 시청자들로부터 '본좌급'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허탈한 결말로 기억되는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이성민의 열연이 유일한 위안이었다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을 정도. 이성민은 작년 천만 관객을 돌파한 화제의 영화 <서울의 봄>에서 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모티브로 한 정상호 참모총장을 연기하며 두 번째 천만영화에 출연했다.

흥미로운 액션활극, 그런데 상대가 <명량>
 
 강동원이 연기한 기구한 사연을 가진 악역 조윤은 많은 관객들로부터 <군도>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대접(?)받았다.
강동원이 연기한 기구한 사연을 가진 악역 조윤은 많은 관객들로부터 <군도>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대접(?)받았다.(주)쇼박스
 
2008년 첫 상업영화 <비스티 보이즈>로 흥행에서 다소 아쉬운 결과를 얻었던 윤종빈 감독은 2012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통해 471만 관객을 동원하고 평단에서도 극찬을 받으면서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당연히 윤종빈 감독의 차기작에 대해 관객들의 많은 관심이 쏟아졌는데 윤종빈 감독은 하정우와 강동원이라는 스타배우를 캐스팅해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 활극 <군도>를 연출했다. 

여름 성수기가 시작되던 2014년7월23일에 개봉한 <군도>는 개봉 첫 날 55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일주일 만에 364만 관객을 모으며 엄청난 흥행기록을 써내려 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일주일 후 <명량>이 개봉하면서 <군도>의 흥행 추이는 빠르게 꺾였고 8월6일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개봉 후 <군도>를 찾는 관객은 크게 줄었다. 그렇게 <군도>는 손익분기점을 살짝 넘긴 477만 관객으로 극장에서 막을 내리며 전형적인 '용두사미' 영화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군도>는 <명량>과 <해적>이라는 거대한 산에 밀려 윤종빈 감독의 필모그라피에서도 크게 언급되지 않는 '비운의 영화'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군도>는 자칫 뻔하게 흘러갈 수 있는 사극액션을 서양장르인 '스파게티 웨스턴'과 접목시키면서 젊은 감독 특유의 신선한 매력을 끄집어냈다. 조영옥 음악감독이 만든 OST 역시 음악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메인타이틀과 도치 테마는 현재까지도 예능에서 종종 사용되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스티 보이즈>,<범죄와의 전쟁>까지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세 편의 영화에서 모두 주연을 맡았던 하정우는 <군도>에서 백정으로 일하다가 조윤(강동원 분)의 음모로 가족을 잃고 지리산 추설의 일원이 된 도치를 연기했다. 하정우는 도치 역을 소화하기 위해 삭발을 감행하는 열정을 불태웠다. <군도> 이후 윤종빈 감독의 차기작 <공작>에 출연하지 않았던 하정우는 2022년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 윤종빈 감독과 재회했다.

<군도>를 관람한 관객들 중 상당수는 강동원이 맡은 악역 조윤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단순하고 평면적인 원한을 가진 도치에 비해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얼자라는 이유로 평생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흑화해 버린 조윤의 스토리는 상당히 입체적이다. 물론 관객들이 악역인 조윤 캐릭터에 공감을 한 이유는 조윤을 연기한 배우가 '조각미남' 강동원이기 때문인 것도 있었을 것이다.

40대 중반에 22살 연기했던 마블리
 
 머동석은 여느 영화에서처럼 <군도>에서도 힘을 앞세운 캐릭터를 연기했다.
머동석은 여느 영화에서처럼 <군도>에서도 힘을 앞세운 캐릭터를 연기했다.(주)쇼박스
 
현재 <황야>에서 엄청난 파워액션을 선보이며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마동석은 2014년 <군도>에서도 주먹질 한 방으로 두 세 명을 날려 버릴 수 있는 파워 캐릭터 천보를 연기했다. 엄청난 괴력도 대단하지만 가장 놀라운 사실은 실제론 불혹이 넘었던 그의 나이가 영화에선 갓 스물을 넘었다는 점이었다. 영화 중반 도치와 천보가 "나가 올해 스물인디...", "나는 스물 둘이여, 이 어린 놈아"라고 말싸움을 하는 장면은 <군도> 최고의 개그포인트였다.

조진웅은 중인 신분으로 과거시험에 여러 번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마한 후 실력보다 뇌물과 연줄로 관직을 얻는 세상에 염증을 느껴 추설에 합류한 이태기 역을 맡았다. 무인 출신이 아니다 보니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로 추설이 일을 도모할 때 전략을 세우거나 정보를 모으는 책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태기는 조윤을 치러 갈 때도 의금부 관리로 사칭해 조윤이 살고 있는 자택의 구조를 알아냈다.

공대에서 소수의 여학생이 여신이 되는 것처럼 거친 사내들 사이에서 소수의 젊은 여성이 속해 있으면 남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경우가 많다. 윤지혜가 연기한 추설의 홍일점 마향 역시 영화 내내 태기와 천보의 연모를 동시에 받았다. 마향 역시 이를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정작 본인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 마향은 '양궁강국'의 여전사 캐릭터답게 활을 주무기로 사용하는데 상당히 정확하고 빠른 활 솜씨를 자랑한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재벌 회장님이나 조직보스를 연기하며 온갖 악행을 '진행시키는' 악역을 도맡아 한 이경영은 <군도>에서 지리산 추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땡추 역을 맡았다. 땡추는 추설에서 탐관오리로부터 빼앗은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하지만 영화 후반 조윤에게 붙잡힌 땡추는 백성들이 자신의 눈 앞에서 목숨을 잃는 것을 보다 못해 어쩔 수 없이 추설의 본거지를 조윤에게 알려줬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군도민란의시대 윤종빈감독 이성민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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