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한국영화 <그랜드파더>가 개봉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의 버스 운전기사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아들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복수를 한다는 내용의 범죄액션영화다. <꽃보다 할배> 멤버로 대중들에게 친근했던 박근형 배우가 주인공 박기광을 연기하며 노익장을 발휘했다. 하지만 '한국판 테이큰'을 표방했던 <그랜드파더>는 전국 3만 1000명으로 흥행에는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배우들이 황혼기에 접어 들면서 배우들의 활동기간은 많이 늘어났지만 1970~198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배우들은 2000년대 이후 영화에서 주연을 연기하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실제로 60~70대의 노장배우들은 영화에서 주인공의 부모나 전면에 나서지 않는 악역보스 같은 역할을 많이 맡고 있다. 2024년 현재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주연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는 최민식 정도 밖에 없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다르다. 할리우드에서는 해리슨 포드나 사무엘 L.잭슨 같은 1940년대 태생의 노장 배우가 여전히 액션 또는 어드벤처 장르의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할 만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13년에도 1980~199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했던 두 액션 히어로가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액션 스릴러 영화에 동반 출연해 노익장을 과시했다. 캐스팅만으로도 중·장년 영화팬들을 설레게 했던 <이스케이프 플랜>이었다.
 
 2010년대에 제작된 탈옥영화 <이스케이프 플랜>은 제작비의 2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2010년대에 제작된 탈옥영화 <이스케이프 플랜>은 제작비의 2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판씨네마(주)
 
탈옥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들

가끔씩 탈주범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지만 사실 경비와 보안이 삼엄한 교도소에서 탈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탈옥수에 대한 뉴스가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도 실제 탈옥에 성공하는 사례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삼엄한 경비와 보안을 뚫고 탈옥에 성공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들이 나온 몇몇 영화들은 흥행에 크게 성공하거나 작품성을 인정 받기도 한다.

지금은 이 영화의 존재 여부를 모르는 사람도 꽤 많아졌지만 <혹성탈출>로 유명한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이 연출한 1973년작 <빠삐용>은 '탈옥영화의 바이블'로 불리는 영화다. <황야의 7인> <타워링> 등으로 유명한 고 스티브 맥퀸이 빠삐용 역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회 수상에 빛나는 더스틴 호프먼이 위조지폐범 드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빠삐용>은 국내에서도 1974년에 개봉해 서울관객 34만으로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알란 파커가 연출을 하고 훗날 감독으로 대성하는 올리버 스톤이 각본을 썼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역시 아카데미 음악상과 각생상, 골든글로브 음악상과 각본상에 빛나는 탈옥영화의 명작이다. 특수교도소 '사그말실라'에 모인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한 죄수들 각자의 이야기가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맥스 역으로 출연했던 고 존 허트는 2013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 길리엄을 연기하기도 했다.

<빠삐용>에 대한 추억이 없는 1970~1980년대 생들에게는 <쇼생크 탈출>이라는 또 하나의 탈옥영화 명작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이다. 재미와 감동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은 <쇼생크 탈출>은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포레스트 검프>와 <펄프픽션>에 밀려 무관에 그치고 말았다. 2004년 BBC '라디오 타임스'에서는 <쇼생크 탈출>을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한 최고의 영화'로 선정한 바 있다.

1996년에 개봉했던 마이클 베이 감독의 <더 록>은 탈옥 영화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해석한 영화다. <더 록>은 악명 높은 교도소 알카트라즈에서 두 번이나 탈옥에 성공한 존 메이슨(고 숀 코너리 분)이 인질로 잡힌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감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영화다. 탈옥했던 감옥으로 거꾸로 돌아간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던 <더 록>은 7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3억 35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록키와 터미네이터에게 주어진 감옥탈출 미션
 
 실베스타 스탤론(왼쪽)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이스케이프 플랜>에서 힘이 아닌 머리를 써서 탈옥에 성공했다.
실베스타 스탤론(왼쪽)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이스케이프 플랜>에서 힘이 아닌 머리를 써서 탈옥에 성공했다.판씨네마(주)
 
실베스타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할리우드 근육질 스타를 대표하는 양대산맥이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두 배우가 한 영화에 동반 출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수완이 있는 제작자라면 두 배우를 같은 영화에 출연시키는 것보다는 두 배우가 따로 출연하는 두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도 전성기가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2010년 <익스펜더블>과 2012년 <익스펜더블2>를 통해 같은 작품에 출연하기 시작한 스탤론과 슈왈제네거는 2013년 <이스케이프 플랜>을 통해 공동주연을 맡아 같은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 비록 전성기가 훌쩍 지난 60대 노장 배우가 됐지만 두 배우의 만남은 액션영화 팬들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고 5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이스케이프 플랜>은 제작비의 2배가 넘는 1억 3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두 배우가 전성기 시절 각종 액션영화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스케이프 플랜>은 스탤론과 슈왈제네거가 교도소에 각종 중화기를 반입해 교도소를 마구 부수는 영화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스케이프 플랜>의 두 주인공 레이 브레슬린(실베스타 스탤론 분)과 에밀 로트마이어(아놀드 슈왈제네거 분)는 엄청난 지능캐릭터로 두 사람은 시종일관 뛰어난 머리와 기지를 발휘해 완벽하게 설계된 첨단감옥에서 빠져 나온다.

<이스케이프 플랜>은 괜찮은 흥행성적에 비해 북미 현지는 물론 국내에서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국내에서는 전국 29만으로 흥행성적도 좋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1980~1990년대 스타일의 고리타분한 탈옥영화 시나리오에 2010년대 그래픽과 분위기를 끼얹으며 이도 저도 아닌 영화에 머물렀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스탤론과 슈왈제네거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영화팬들에게 <이스케이프 플랜>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영화였다. 

두 사람의 절묘한 협업을 통해 무사히 탈옥에 성공한 후 로트마이어는 브레슬린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며 "다신 만나지 말자"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2018년에 개봉한 <이스케이프 플랜2: 하데스>에 출연하지 않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드랙스로 유명한 데이브 바티스타가 합류한 2편은 1700만 달러 흥행으로 제작비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했고 2019년에 나온 3편은 북미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고난의 예수님에서 교도소 악질 소장으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님을 연기했던 제임스 카비젤은 <이스케이프 플랜>에서 악역으로 변신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님을 연기했던 제임스 카비젤은 <이스케이프 플랜>에서 악역으로 변신했다.판씨네마(주)
 
<이스케이프 플랜>은 실베스타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로 구성된 주연배우의 라인업도 대단했지만 조연들의 면면도 꽤나 화려했다. 두 주인공이 갇힌 비밀 사설감옥을 이끄는 교도소장 윌러드 홉스를 연기한 배우는 2004년 멜 깁슨이 연출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님 역을 맡았던 제임스 카비젤이었다. 예수님에서 두 어르신(?)을 괴롭히는 빌런으로 변신한 카비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상당히 쏠쏠하다.

탈옥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는 교도소 내부에서 주인공을 돕는 역할을 하는 조력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스케이프 플랜>에서는 이 내부 조력자 역할을 교도소 내 재소자들의 치료를 책임지는 닥터 에밀 케이케브 역의 샘 닐이 맡았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서 공룡 전문가 앨런 그랜트를 연기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샘 닐은 <이스케이프 플랜>에서 브레슬린의 설득에 감화돼 그의 탈출을 돕는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10년 넘게 활약했던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 출신의 비니 존스는 은퇴 후 배우로 전향해 현재까지 할리우드와 영국을 넘나들면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스케이프 플랜>에서는 교도관들 중 가장 전투력이 강한 드레이크를 연기했다. 일부러 감정이 없는 연기를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비니 존스는 마치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하는 딱딱한 연기로 묘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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