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고려 거란 전쟁> 관련 이미지.
KBS2
양규의 결사대는 압도적인 전력의 열세 속에서도 거란군에 돌진하여 사투를 벌였다. 쏟아지는 창칼과 화살 세례에 고려군은 하나둘씩 쓰러져가고 결국 양규와 김숙흥만이 남았다.
피투성이가 된 양규는 이미 온몸에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 고통을 참으며 마지막 힘을 모아 활을 들고 야율융서를 겨냥한다. 백보 안으로 진입하여 날린 화살은 야율융서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진다. 양규는 "아직 열 보 부족하다"고 혼잣말을 되뇌이며 힘겹게 한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어느새 양규의 용맹에 질린 거란군들도 어느새 뒷걸음치기 시작하고 야율융서는 "지독한 놈"이라고 경악한다.
양규는 마지막 포효를 내지르며 포기하지 않고 야율융서를 향하여 전진하지만, 끝내 기력이 다하여 최후의 화살을 쏘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김숙흥은 양규를 애타게 부르짖지만 그 역시 거란군의 포위에 둘러싸여 최후를 맞이한다. 이어 온몸에 화살을 맞는 양규와 김숙흥이 선 채로 장렬하게 전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려사> 94권 '양규열전'에 따르면 "양규는 원군도 없이 한달 사이 일곱 번 싸워 수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3만여명의 백성들을 되찾았다. 양규와 김숙흥은 거란군과 싸우다가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고 그들의 활약상과 최후를 기술하고 있다.
이후 야율융서가 끝내 고려와 양규를 굴복시키지 못했다고 씁쓸해 하는 모습과, 고려군의 추격을 피하여 압록강을 건너 도주하는 모습을 끝으로 2차 여요전쟁은 막을 내린다.
양규와 김숙흥의 시신은 고려군에 의하여 다시 성으로 돌아온다. 운명하던 순간까지도 김숙흥의 주먹은 펴지지 않았고 양규는 손에 화살을 든 채였다. 살아남은 장수들은 두 사람의 장렬한 최후에 모두 눈물을 쏟았다. 흥화진부사 정성(김신호)는 양규의 손을 어루만지며"그동안 수고하셨다. 이제 좀 주무십시오"라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남기며 끝내 통곡했다.
양규는 현종-서희-강감찬과 더불어 여요전쟁의 대표적인 영웅이지만 그동안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못했던 인물이다. 1차 여요전쟁에서 외교담판만으로 강동 6주를 얻어낸 서희, 3차 여요전쟁에서 귀주대첩의 대승을 이끈 강감찬의 인지도가 워낙 높은 반면, 양규는 고려가 가장 열세를 기록했던 2차 여요전쟁 막바지에 전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양규의 활약이 고려에 미친 영향은 결코 서희나 강감찬에 뒤지지 않는다. 2차여요전쟁은 고려가 건국 이후 가장 멸망에 근접했던 최대의 위기였다. 고려의 서북면 방어지휘관이었던 양규는 당대 동아 시아 최고의 강군이던 거란의 대군을 맞이하여 소수의 병력으로 흥화진을 지켜낸데 이어, 곽주 탈환전 등 각지에서 거란군을 격파하여 포로로 잡혀가던 백성들까지 구출해내는 놀라운 전과를 올렸다. 양규가 고려 역사를 통틀어 유금필, 척준경, 김경손, 최영 등과 함께 손꼽히는 최고의 용장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만일 양규의 활약이 없었다면 고려의 최전방 방어선은 맥없이 뜷렸을 것이고 배후의 위협이 사라진 거란군은 더 적극적으로 남하하여 서경(평양)을 함락하거나 남쪽으로 몽진한 현종을 끝까지 추격하여 사로잡았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양규가 배후에서 끊임없이 거란의 보급 거점과 회군 루트를 위협한 덕분에 거란군은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함락하고도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막대한 피해만 입은 채 소득없이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제2차 여요전쟁의 실질적인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