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방영된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은 원작 웹툰을 그린 강풀 작가가 직접 각본을 쓰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원작자가 직접 각본을 쓰면 원작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포함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빙>에서는 차태현이 연기한 '번개맨' 전계도와 류승범이 맡았던 프랭크, 김중희가 연기했던 림재석 등 원작에 없었던 캐릭터가 대거 등장해 드라마만의 재미를 더했다.

원작에 나왔던 인물들 역시 드라마와 성격이 달랐던 경우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배우 박희순이 연기했던 북한군의 리더 김덕윤이었다. 물론 북한의 초능력자들을 찾아내 기르고 이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온 것과 주석궁을 침범했던 김두식(조인성 분)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웹툰과 드라마가 비슷했다. 하지만 부하들을 단지 '도구'로만 취급하던 원작의 김덕윤과 달리 드라마 속 김덕윤은 훨씬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번개맨에게 팔이 잘린 장준화(양동근 분)에게 북으로 갈 것을 지시하며 "넌 가야 할 이유가 있잖네, 가족이 있잖네"라고 외치는 장면은 어쩐지 찡했던 김덕윤의 명대사였다. 사실 박희순은 <무빙> 전에도 이처럼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악역(?) 연기를 소화한 적이 있다. 지난 2013년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배우였던 공유를 거친 '상남자 액션배우'로 변신시켰던 원신연 감독의 신작 <용의자>였다.
 
 공유의 첫 단독주연영화 <용의자>는 4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공유의 첫 단독주연영화 <용의자>는 4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주)쇼박스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갖춘 배우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1990년 연극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박희순은 박영규와 손병호, 성지루, 유해진, 장영남 등 많은 배우들을 배출한 극단 '목화' 출신이다. 실제로 박희순은 10년 넘게 목화의 간판배우로 활약했고 유해진과는 함께 극단 활동을 했다. 2002년 공포 옴니버스영화 <쓰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영화 활동을 시작한 박희순은 <보스상륙작전> <가족> <남극일기> 등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박희순은 2007년 원신연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세븐데이즈>에서 김성열 형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며 청룡영화상을 비롯해 5개 영화제의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2009년 <작전>을 통해 처음 주연을 맡은 박희순은 < 10억 > <맨발의 꿈> <혈투> <가비> <간기남> 등에서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나마 2011년 239만 관객을 모은 <의뢰인>이 박희순의 대표적인 흥행작이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렇게 좋은 연기에 비해 흥행과는 좀처럼 인연을 맺지 못했던 박희순은 2013년 <세븐데이즈>를 연출했던 원신연 감독의 신작 <용의자>에 출연했다. 박희순이 살인용의자 지동철(공유 분)을 추적하는 공군대령 민세훈을 연기했던 <용의자>는 전국 413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2010년대 중반에는 <내 연애의 모든 것>과 < 실종느와르 M >에 출연하며 드라마로 활동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박희순은 2017년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남한산성>, 장준환 감독이 만든 < 1987 >에 출연해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면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혈투> <브이아이피>에 이어 박훈정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췄던 <마녀>에서는 1세대 신체강화인간 '미스터최'를 연기해 2세대 최강자 구자윤(김다미 분)에 맞서 싸웠다(물론 두 사람의 대결은 구자윤의 아주 손쉬운 승리로 끝났다).

박희순은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 네임>에서 마약 조직 동천파의 보스이자 주인공 윤지우(한소희 분)를 경찰로 잠입시킨 최종보스 최무진 역을 맡았고 2023년 <무빙>에서는 북한군의 리더 김덕윤을 연기했다.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박희순은 오는 1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쓴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선산>에 출연한다.

무술감독도 배우로 참여한 실감나는 액션
 
 공유는 <용의자>에서 많은 액션장면들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공유는 <용의자>에서 많은 액션장면들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하는 투혼을 발휘했다.(주)쇼박스
 
2009년 12월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공유는 영화 <김종욱 찾기>와 <도가니>, 드라마 <빅>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주로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멜로물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에 맞서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역할이었다. 그런 공유가 2013년 영화 <용의자>를 통해 전직 북한특수요원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관객들의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액션배우 공유'에 대한 이미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유는 <용의자>를 통해 기존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벗고 거친 상남자의 매력을 보여주며 '원톱배우'로서 확실히 자리 잡았다. 특히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촬영한 암벽등반 장면을 비롯해 한강낙하와 카체이싱 등 화려한 액션 장면들을 선보였고 애틋한 부성애 연기 역시 상당히 돋보였다. <용의자>를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난 공유는 2015년 <부산행>에 출연하면서 천만 배우로 올라섰다.

대한민국이 분단국가인 만큼 북한은 영화에서도 소재로 자주 쓰일 수밖에 없다. <태극기 휘날리며>나 <웰컴 투 동막골>처럼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쉬리>를 비롯해 < 공동경비구역 JSA > <의형제>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공조> 등 다양한 장르의 북한 관련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용의자>는 볼거리가 풍부한 액션 스릴러 장르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여느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화려한 액션장면은 <용의자>의 가장 큰 볼거리다. 특히 영화 중반 지동철과 민세훈이 선보이는 좁은 골목의 카체이싱은 <용의자>의 백미로 지동철은 후진을 통해 골목의 좁은 계단을 내려가는 묘기에 가까운 운전솜씨를 선보인다(운전을 하면서 온갖 기물을 파손하고 다니는 와중에도 단 한 건의 인명사고도 내지 않는 것은 카체이싱 액션의 묘미다).

<용의자>에서는 공유를 비롯해 여러 조·단역 배우들도 고난도의 액션연기를 선보이는데 이는 영화의 무술감독과 액션배우들이 직접 영화 속 캐릭터를 맡아 연기를 펼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하철 역에서 지동철과 수준 높은 액션을 주고 받은 배우는 한국과 홍콩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원진 무술감독이었다. 원신연 감독의 친동생이기도 한 액션배우 원풍연도 영화 후반 김석호 실장(조성하 분)의 곁을 지키는 요원을 연기했다.

빌런의 비리 세상에 공개한 히로인
 
 유다인이 연기한 최경희는 국정원 실세 김석호의 비리를 세상에 폭로하는 활약을 펼쳤다.
유다인이 연기한 최경희는 국정원 실세 김석호의 비리를 세상에 폭로하는 활약을 펼쳤다.(주)쇼박스
 
유다인은 TV와 영화, 주연과 조연,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다. <용의자>에서는 기자 출신으로 탈북민에 관한 다큐를 제작한다는 목적으로 지동철에게 접근해 김석호의 비리를 파헤치는 최경희 역을 맡았다. 히로인 포지션의 캐릭터라고 하기엔 고생을 상당히 많이 하는 편인데 영화 후반엔 김석호의 비리를 세상에 폭로하면서 지동철의 누명을 풀어주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조성하가 연기한 국가정보원 대북정보실장 김석호는 <용의자>의 메인 빌런이다. 민세훈과는 군대동기지만 처세에 능한 김석호는 승승장구하면서 국정원의 실세가 됐다. 공작원 출신 탈북자들로 구성된 사병조직을 만들어 이용하는 김석호는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돈을 위해서라면 인신매매나 국가기밀을 팔아먹는 짓도 서슴지 않는 '만악의 근본'이다. 결국 지동철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정의구현을 당한다.

겨칠고 무서운 악역 연기부터 진중한 사극연기, 여기에 코믹한 연기도 소화 가능한 배우 조재윤은 <용의자>에서 민세훈 대령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기무사 조 대위를 연기했다. 민세훈이 주로 현장을 뛰어다니면 조 대위는 수사본부에서 정보를 수집해 민세훈, 최경희와 공유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김석호 역의 조성하와 조 대위 역의 조재윤은 2017년 드라마 <구해줘>에서 사이비 종교 구선원의 교주와 집사로 함께 출연한 바 있다. 

<암살> <부산행> <극한직업>에 이어 최근 <서울의 봄>을 통해 커리어 4번째 천만 영화에 출연한 배우 김의성은 <용의자>에서 국정원의 신 차장을 연기했다. 특히 영화 중반 기분 나쁜 말투로 민세훈을 마치 간첩인 양 몰아가면서 심문하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그렇게 짧은 출연으로 끝나는 듯했던 신 차장은 영화 후반 지동철이 잡힌 후 다시 등장해 "지동철을 국정원에 넘기라"고 했다가 민세훈으로부터 무시를 당한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용의자 원신연감독 박희순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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