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 감독이 된 강제규 감독은 2011년 300억 가까운 제작비가 투입된 신작 <마이웨이>를 선보였다. <명량>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 감독이 된 김한민 감독도 제작비 300억 원의 <한산: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를 연출했다. 2009년 <해운대>로 천만 감독 대열에 합류한 윤제균 감독 역시 2014년 <국제시장>, 2022년<영웅> 등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영화들을 차기작으로 선보였다.

반면에 천만 영화 이후 차기작으로 오히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영화를 만들면서 '한 박자 쉬어가기'를 선택한 감독들도 있었다. <왕의 남자> 이후 <라디오스타>를 만들었던 이준익 감독과 <괴물>이후 <마더>를 선보였던 봉준호 감독,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 7년의 밤 >을 연출했던 추창민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은 차기작 <드림>에서 제작비가 늘어났지만 <드림>을 대작영화로 분류하는 관객은 거의 없다.

<실미도>로 한국 최초의 천만 감독이 된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가 개봉하기 10년 전에도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화제작 <투캅스>를 만든 적이 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투캅스>를 통해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떠오른 이후 다소 독특한 스타일의 성인코미디를 차기작으로 선보인 바 있다. 박중훈과 고 최진실의 코믹연기대결을 통해 1994년에서 199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많은 관객들을 즐겁게 했던 영화 <마누라 죽이기>였다.
 
 <마누라 죽이기>는 1994년 연말에 개봉해 서울에서만 34만 관객을 동원했다.
<마누라 죽이기>는 1994년 연말에 개봉해 서울에서만 34만 관객을 동원했다.(주)강우석 프로덕션
 
달콤·살벌한 부부싸움 다룬 영화들

대부분의 부부들은 결혼식장에서 평생 변하지 않을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사실 부부는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사이다. 물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도 있지만 실제로는 부부 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기도 하고 그 다툼의 크기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이혼을 통해 남남이 되기도 한다. 특히 영화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부부싸움을 집중조명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1989년에 개봉했던 영화 <장미의 전쟁>은 <배트맨 리턴즈>의 펭귄맨으로 유명한 대니 드비토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26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 6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장미의 전쟁>은 첫눈에 반해 결혼한 부부가 경제적, 물질적 안정을 이룬 후 싸움과 의견충돌 횟수가 늘어나고 결국 집 소유권을 놓고 양보 없는 싸움을 하다가 끔찍한 파국을 맞는 이야기다.

<장미의 전쟁>의 이야기에서 스케일이 커지고 두 부부의 직업을 킬러로 바꾸면 2005년에 개봉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미스터&미세스 스미스>가 된다. 말싸움을 하거나 집에 있는 물건을 집어 던지는 고전적인(?) 부부싸움을 넘어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에서는 서로에게 총을 쏘고 폭탄을 터트리며 자동차로 상대를 들이 받는다. 물론 오락영화답게 "스미스 부부는 싸우면서 화해했어요"라는 아름다운(?)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2007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싸움>은 '그저 예쁘기만 했던' 손예진을 배우로 성장시킨 드라마 <연애시대>를 연출했던 한지승 감독이 6년 만에 연출한 영화였다. <싸움>은 '하드보일드 로맨틱코미디'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장르를 붙이고 설경구와 김태희가 주연을 맡으면서 개봉 당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전국 38만 관객에 그치면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고 이선균과 임수정, 류승룡의 연기앙상블이 돋보였던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편이 아내와 이혼하기 위해 전설의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권태기에 빠진 부부사이'라는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코믹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웰메이드 상업영화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강우석 감독의 흔치 않은 '19금 코미디'
 
 박중훈(왼쪽)과 최진실이 부부로 출연한 <마누라 죽이기>는 강우석 감독 커리어에서 흔치 않은 '19금 코미디영화'다.
박중훈(왼쪽)과 최진실이 부부로 출연한 <마누라 죽이기>는 강우석 감독 커리어에서 흔치 않은 '19금 코미디영화'다.(주)강우석 프로덕션
 
영화 제목에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많은 은유와 상징을 담을 수 있다. 2003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범인의 시선에서 제목을 지었지만 영화는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은유나 상징도 없는 직관적인 제목이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때도 있다. 1994년 12월에 개봉한 <마누라 죽이기> 역시 아무런 은유와 상징도 들어가지 않는 정공법(?)의 제목으로 승부를 본 영화다.

<마누라 죽이기>는 영화 제작사의 사장이지만 실세인 아내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남편 박봉수(박중훈 분)가 아내 장소영(최진실 분)에게 질려 아내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다. 아무리 권태기가 왔다고 해서 아내를 죽이려는 생각을 했다는 설정이 대단히 황당하지만 <마누라 죽이기>는 강우석 감독의 전작 <투캅스>처럼 대놓고 코미디를 지향했기 때문에 관객들도 크게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박중훈은 <투캅스>를 통해 이미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배우로 떠올랐지만 TV드라마와 CF로 정점을 찍은 최진실은 1992년 서울관객 22만의 <미스터 맘마>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 쪽에선 확실한 대표작이 없었다. 하지만 <마누라 죽이기>를 통해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치면서 서울 34만 관객 동원에 크게 기여했고 이듬해 대종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여성배우 대열에 올라섰다.

<마누라 죽이기>는 강우석 감독의 물 오른 연출과 박중훈, 최진실의 열연이 만난 유쾌한 코미디 영화였지만 사실 영화의 결말은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봉수는 킬러에게 아내를 죽여 달라고 의뢰한 후 우연히 소영의 임신사실을 알게 되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소영의 소중함을 재확인한다. 하지만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봉수는 또 다른 여자를 만나고 소영은 봉수를 죽이기 위해 킬러를 고용하면서 영화가 마무리된다.

강우석 감독의 대표작 <투캅스>가 고 필립 느와레 주연의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와 표절시비가 있었던 것처럼 <마누라 죽이기> 역시 필립 느와레가 출연했던 프랑스영화 <탱고>와의 유사성이 지적됐다. 일단 아내를 죽이려는 기본 설정부터 두 영화가 매우 흡사한데 <마이 뉴 파트너>와 마찬가지로 <탱고> 역시 서울관객 2000명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으면서 커다란 소동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어설프고 무능한 킬러
 
 어설픈 킬러를 연기한 최종원(오른쪽)은 <마누라 죽이기> 이후 충무로 최고의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어설픈 킬러를 연기한 최종원(오른쪽)은 <마누라 죽이기> 이후 충무로 최고의 신스틸러로 떠올랐다.(주)강우석 프로덕션
 
1993년 유하 감독의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통해 데뷔한 엄정화는 아직 신인배우의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1994년 <마누라 죽이기>에 출연했다. 엄정화가 연기한 혜리는 봉수와 소영이 제작하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봉수의 내연녀이기도 하다. 하지만 혜리는 제작사 대표의 내연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조형기 분)과도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갔다.

<투캅스>에서 마약상 두목을 연기했던 최종원 배우는 <마누라 죽이기>에서 봉수가 고용한 킬러를 연기했다. 여느 할리우드 영화의 킬러들처럼 굉장히 비밀스럽게 등장하지만 금방 어설픈 행동과 실력이 들통나면서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사극에서 주로 간교한 능구렁이 역할을 주로 맡았던 최종원 배우는 <마누라 죽이기>에서 후반 대부분의 웃음지분을 책임지며 1990년대 중반 충무로 최고의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혼혈선수 하국상, <투캅스>에서 자해전문 잡범으로 출연했던 권용운은 <마누라 죽이기>에서 봉수와 소영 부부가 휴게소에서 만나는 탈영병으로 출연했다. 봉수는 소영을 인질로 잡고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탈영병을 향해 "망설이지 말고 군인답게 빨리 행동에 옮겨"라고 부추긴다. 결국 분노한 탈영병은 소영을 풀어주고 대신 봉수를 인질로 잡아 얼차려를 시킨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마누라죽이기 강우석감독 최진실 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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