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짝사랑>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1.
짝사랑
한국 / 2021 / 29분
감독: 주영
인범(이한주 분)은 중장비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크게 모자라는 것도 없지만 내일에 대한 미래나 목표도 없는 삶. 지금 다니는 공장 역시 스스로의 의지보다는 주변의 권유가 더 컸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퇴근할 때까지 하루종일 무언가를 만들고는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어느 날, 그런 그에게 하영(이상희 분)이 스며들듯 다가온다.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중장비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는 그녀. 인범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짝사랑>은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쇳소리가 끊이지 않고 분진이 마구 흩날리는 공간과 두 남녀의 사랑을 연결시킨 형태만 봐도 그렇다. 사랑이 시작되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거나 특별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특히 이제 막 시작되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영화가 선택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이 작품은 그런 지점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있다. 영화는 자신의 감정조차 어쩔 줄 모르는 이 작은 존재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철저히 감추며 끝까지 나아간다.
사랑은 이스트와도 같다. 한 인간의 삶을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 완성되지 못한 형태나 혼자만의 감정도 예외는 아니다. 하영을 바라보는 인범 역시 마찬가지. 그의 하루는 이제 실없는 웃음으로 가득하고, 어떻게든 다가가기 위해 계획에도 없던 중장비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는 그다. 그런 인범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위치 역시 후면에서 측면으로, 측면에서 다시 전면으로 조금씩 옮겨간다. 내일을 기다리게 되고 미래를 약속하게 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아무런 의욕도 없이 땅만 내려다보며 출근 자전거를 타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퇴근하고 밥 같이 먹을래요? 친구 없는 사람끼리?"
이 작품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은 '짝사랑'의 위치가 옮겨가는 지점이다. 처음 인범으로 인해 시작된 외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확인해 가며 하나의 완성된 사랑이 되어가는 듯하다. 어떤 사고로 인해 그가 하영과 고대하던 봄날의 데이트에 가지 못하게 되기 직전까지다. 약속 시간에 맞춰 그를 기다리는 하영은 그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홀로 서성이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짝사랑'의 의미는 완전히 그녀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영화에서 표현하고 있지 않은 인범의 미래가 어떤 그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사랑이 움트는 자리에서 대상을 홀로 바라보며 짝사랑을 시작한 인범과 반대로, 하영은 사랑이 저물어가는 자리에서 그 대상을 상실하며 남겨진 상태의 짝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오늘도 7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스치듯 지나간다. 처음 이 공장에 들어온 남자의 그릇을 감싸고 있던 신문 뭉치 속 기사다. 언젠가 있었던 산업재해를 취재한 내용일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이 지점은, 바로 직전에 놓여 있었던 인범의 사고와 더불어 모두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죽음과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고 있다. 작품을 연출한 주영 감독의 목소리가 이 장면에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실제로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20년 2062명, 2021년 2080명, 2022년 2223명으로 매년 2000명을 웃돌고 있다.
사실 영화는 처음부터 오롯이 감출 생각이 없었다. 공장 설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던 반장 태수(양흥주 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던 책임자의 모습이다. 누가 봐도 교체가 필요해 보이지만 아직 쓸만하다던, 아마도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였을 그 무신경한 태도로부터 인범의 마지막 장면은 시작된다. 감독이 들여다보고자 했던 모든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고 역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