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신생대의 삶>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01.
임정환 감독의 전작 <국경의 왕>(2017)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의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었다. 친구를 만나러 폴란드로 향한 유진(김새벽 분)과 우크라이나로 간 동철(조현철 분)이 각자의 기묘한 일상을 겪는다는 것이 커다란 뼈대다. 그는 자신의 첫 장편이었던 <라오스>(2014)에서도 비슷한 작법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던 바 있다. 라오스를 찾은 영화과 졸업생들의 여정. 두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면 타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업과 기존에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서사의 형식을 탈피하는 이야기 구조다. 그의 작품에서 이야기는 단순히 하나의 서사로만 향하지 않는다. 장면이나 감정, 인물의 형태 또한 정확히 하나의 의미로만 수렴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에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현재의 이야기가 어떤 모양의 미래도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독의 믿음이 엿보이는 듯하다.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수렴하면서도 확장하는 양면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감독의 신작이자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신생대의 삶> 역시 그가 그동안 해왔던 작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발트해 인근의 리투아니아라는 조금은 생소하기도 한 국가를 배경으로 한 이번 작품에서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감정과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 그려진다. 인물과 사건, 이야기보다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시간들에 대한 시선이다. 이는 타이틀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다. '공룡이 멸종한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의미하는 지질시대의 구분 용어'를 뜻하는 '신생대'는 지금 우리의 시간 역시 신생대의 어느 순간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신생대, 6600만 년이라는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을 채우고 있을 수많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가 말하는 '삶'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순간까지도 모두.
02.
"남편이 실종됐어. 6개월 동안 찾을 수가 없어."
영화는 실종된 남편을 찾아 리투아니아로 향하는 민주(김새벽 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비트코인으로 떼돈을 벌겠다며 설치다 사라진 남편은 자신을 찾아달라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사라졌다. 남편을 찾는 일은 처음부터 쉽지 않다.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물론, 묵기로 했던 숙소는 모든 게 고장 난 채로 호스트의 뻔뻔함만 남겼다. 그나마 대학 후배인 오영(심달기 분)을 만난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다. 오래전 리투아니아로 넘어와 살고 있는 그녀는 준화(박종환 분)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밤새 어울리며 술을 마시던 세 사람의 하루는 민주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전혀 다른 순간이 된다. 오영과 준화가 이별을 심각하게 생각할 정도로 심하게 다툰 다음 날이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아갈 것 같던 이야기는 이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오영은 아는 체 인사를 건네는 민주를 모르는 척하기도 하고, 조금 전까지 함께 술을 마시던 준화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찾아와 자신을 국제 형사 기구의 경찰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의 장면에서는 민주와 준화가 혼인 신고를 앞둔 커플로 등장해 사랑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완성해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 장면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감이란 아주 짧은 블랭크와 한 번의 암전뿐이다. 다시 말해,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모든 장면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종의 평행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듯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