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아무 잘못 없는>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중학교 3학년인 도윤(한기옥 분)은 검도 특기생이다. 곧 다가올 동계 대회를 굳이 나가지 않더라도 체고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벌써 여러 다른 대회에서 입상도 해왔다. 남은 중학교 생활을 이대로만 잘 마무리하면 꿈꾸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내일의 상황은 급변하고 만다. 비닐하우스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엄마(이지영 분)가 갑자기 쓰러지면서다. 아빠(박일용 분)가 손이 찢어진 동생 지후(전민우 분)를 병원에 데려간 사이 일산화탄소가 누출되면서 혼자 남아 있던 엄마가 의식을 잃게 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 마을 어른들은 이 사고가 동생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을 옮긴다.
영화 <아무 잘못 없는>을 통해 박찬우 감독은 가족이라는 범주와 그 안에 위치한 개인의 의무와 선택을 충돌시킨다. 이를 통해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그로부터 파편이 되어 튀어 오르는 잔해다. 부서진 후에 무엇인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는 자신의 시점과 위치, 그리고 감정. 여기에서 개인은 누구나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반동을 표출하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다시 가족의 영역 안에서 어떤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으로 치환되며 죄책감과 상처, 슬픔을 일으킨다.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종종 우리가 아픔을 겪는 이유다. 스스로를 책임지고자 했을 뿐인 선택이 한없이 이기적이고 못된 선택으로 치부될 때. 심지어는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을 때. 영화는 16살 소녀의 아직은 어린, 작고 여린 마음을 통해 그 지점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02.
"엄마가 저리 된 것도 지우 때문이잖아."
작품에 등장하는 도윤이라는 인물의 양손에는 두 개의 역할이 쥐어져 있다. 하나는 학생이자 검도 유망주로서의 역할(개인)이고, 또 하나는 딸과 누나로서의 역할(가족)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 역할 하나씩을 각각의 내러티브로 삼으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가족 내에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두드러지지 않던 후자의 역할이 엄마의 사고 이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다. 7살밖에 되지 않은 동생 지후는 아직 혼자 지낼 수가 없고, 엄마가 쓰러진 상황에서 유일한 보호자일 아빠는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병원에 매인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도윤의 입장에서 이 두 가지 역할을 균등하게 혹은 융통성 있게 분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손이 크게 찢어져 매일 소독을 해야 하는 동생을 돌보기 위해서는 오후 훈련도 빠지고 집으로 일찍 돌아와야 하는 상황. 동계 대회를 위한 합숙 훈련은커녕 대회를 나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가족의 범주에 떠밀려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 문제가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도윤이 아직 16살에 불과하다는 점과 곧 중요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운한 마음에 아빠의 말 한마디는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찢어진 동생 지후의 오른손 상처 소독 담당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입장은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고 동생을 챙기는 역할만을 강요해 오는 모습이 괜히 미울 수 있는 순간이다. 게다가 마을 어른들은 엄마를 위독하게 만든 이 사고가 지후의 장난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빠는 그런 동생을 감싸고 돌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