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미지수>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03.
이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인물은 상실이라는 단어 위에 머물고 있다. 그중 어떤 인물은 상실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굳이 구분 짓지 않도록 하겠다. 그 또한 누군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존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여전히 그 작은 공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로 존재하며,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2년이라는 시간이 벌써 지나가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크게 세 공간에 의미를 두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가장 많은 장면이 할애되어 있는 지수의 집과 시작점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 기완의 치킨집, 그리고 짧지만 마음을 동요하게 만드는 신애(윤유선 분)의 집이다. 서로 독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이지만 영화의 중심 사건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세 공간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서로 각자의 꿈을 꾸는 공간처럼도 여겨진다. 지수는 사건 이후 자신이 마주할 수 없는 현실을 이 공간 속에 감춰두고, 기완은 돌이킬 수 없는 스스로의 자책과 후회를 가둬놓는다. 신애에게는 여전히 놓을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꿈을 이 공간에서 꾼다.
다시 말해, 이 작품에서 꿈을 꾼다는 행위는 오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영화는 극의 처음에서 이들 모두가 수동적으로 꿈을 꾸는 존재가 아닌, 꿈에서 벗어날 의지가 없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 이제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 대상의 얼굴을 애써 그리고자 수없이 얼굴 윤곽만 그리던 사람과 로켓 발사에 관한 기사와 영상을 끊임없이 찾아보는 사람으로 말이다. 누군가를 상실하고 난 뒤에 그 어두운 시간 속에서 길을 잃게 되면, 상체는 제발 도와달라 말하면서 하체는 가라앉는 그대로 아무 의지 없이 멈춰버리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이들 모두가 그런 모습이다.
"나 혼자 우주에서 떠다니고 있어. 나 좀 꺼내 줘. 그곳에서."
04.
기완의 아내인 인선과 신애의 존재는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중요하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다른 조각을 어루만지고 현실에 안착할 수 있게끔 만드는 존재로 기능한다. 인선은 기완이 우주에서 헤매는 동안 현실을 붙잡고 버텨내는 인물이며, 신애는 지수가 처음으로 용기를 말할 때 그 자리를 반듯하게 닦고 안아주는 존재가 된다. 물론 두 사람으로 인해 기완과 지수가 단번에 일상을 회복하게 된다거나 과거의 모든 상처를 지워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존재하기에 억지 노력 없이 충분히 자신의 아픔 속에서 머무를 수 있게 되고, 잠깐이나마 현재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인선과 신애 사이에 차이는 존재한다.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인선과 달리, 신애는 그 사건 중심에 놓인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극이 말하고 있는 기완과 인선의 쪽에 훨씬 더 가까운 인물이며, 이들보다도 훨씬 더 어둡고 깊은 상실 속에 위치한 대상이기도 하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윤유선 배우의 짧고 고요한 연기 하나, 지수를 말없이 꼭 껴안아주는 신애의 모습은 그래서 큰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그런 인물의 전면과 후면을 그리 가깝지고 멀지도 않은 위치에서 조심스럽게 번갈아가며 비추는데, 눈꺼풀 아래에 잠겨 있을 인물의 슬픔이 스크린 너머로 옮겨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바로 이어 등장하는 처절한 전투 신.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이 장면으로 인해 신애라는 인물의 내면은 입체적인 서브텍스트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