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채소년> 스틸컷
(주)영화사 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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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는 강진의 이야기 이면에 다영(강미나 분)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또 하나의 축으로 삼아 전개시켜 나간다. 영화의 시작부터 나이 많은 아저씨와 함께 모텔로 향하는, 원조 교제가 의심되는 아이다.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돈이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비싼 화장품도 사야 하고, 자신의 집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어필해야만 한다. 권력의 역학 관계는 여자 무리라고 해서 그리 다르지 않아서, 조금만 흠이 생기면 금방 내쳐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남영과 만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를 짝사랑하는 신지(신수현 분)가 때때로 의심의 시선을 던져온다.
그런 그녀가 타인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랑의 돈봉투 분실 사건으로 인해 강진의 도움을 받게 되면 서다. 중학교 때 집이 망하면서 상황이 어려워졌고 늘 돈이 필요했다고 말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을 만나는 것은 진짜 원조 교제를 해서가 아니라 상황을 만들어 돈을 훔치기 위해서라고도 솔직히 밝힌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다영이라는 인물은 강진의 유약한 면을 끊임없이 건드려오는 인물이다. 어려운 가정 상황이라는 유사성 때문에, 강진이 짝사랑하고 있다는 연모의 부분 때문에, 또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느끼고 있는 외로움의 동질감 때문에 말이다. 때마다 반복되는 두 사람의 만남과 연결성은 강진으로 하여금 사채업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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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가해졌던 폭력적이고 무기력하기만 한 상황에 맞서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으나 부정한 방법으로 쌓아 올린 탑은 작은 균열에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거대해진 강진의 자금력과 위치에 잠시 흔들리던 남영은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다시 도전을 해온다. 밖에서는 사채를 빌려 쓴 아이들에게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선동을 하고, 안으로는 강진을 도와 수금을 해오던 만수(이일준 분)를 이간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다영을 과거의 착한 학생의 자리로 되돌리고자 하는 희원(서혜원 분)이 신지 무리에게 약점을 잡히는 문제가 더해지고 만다.
밖에서의 공격과 안에서의 배신, 지키고자 했던 존재의 위기까지. 심지어 수금이 어려워지자 일순 태도를 바꾸며 압력을 가해오는 사채업자 랑의 모습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문제 속에서 강진은 단번에 추락하고 만다. 하룻밤의 꿈을 지나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 같지만 아무것도 지킬 것이 없었던 과거와는 이제 많은 것이 달라지고 말았다. 앞서 강진과 다영의 관계를 여러 지점에서 강하게 묶어두었던 설정은 여기에서 제 역할을 해낸다. 강진의 추락으로 인해 다영 또한 한동안 멀리 할 수 있었던 어른들의 추악한 욕정으로부터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시작이 살아남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쪽이 더 큰 문제였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아이들을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은 어른들의 무관심과 어두운 욕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끝을 향해 나아가버린 아이들의 미성숙함과 탐욕 사이에서 말이다. 이는 오늘에 가로막힌 강진과 다영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마치 세상이 자신의 발아래에 놓인 것처럼 굴던 남영과 기영(이찬영 분) 무리의 가치관과 태도 역시 그릇된 어른들의 가르침과 행동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