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는 많은 킬러들이 존재하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화계를 대표하는 킬러는 단연 뤽 베송 감독이 창조하고 배우 장 르노가 구현한 고독한 킬러 '레옹'이었다. 1994년에 개봉한 <레옹>의 주인공 레옹은 특유의 고독하면서도 쓸쓸한 이미지와 킬러로서의 탁월한 실력, 그리고 의외로 고전영화를 좋아하고 작은 화분을 키우는 반전매력까지 선보이면서 국내 관객들에게 유난히 많은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다. 

하지만 2014년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20년 간 킬러계를 독주하던 레옹의 시대가 끝나고 이 남자의 시대가 도래했다. 주변에 어떤 도구든 그의 손에 들리면 살인무기가 되는 '인간흉기' 존 윅이다. 2014년 1편이 개봉한 <존 윅>은 지난 3월 4편이 개봉해 큰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각종 영화에서 킬러가 현란한 기술을 선보이면 관객들은 "와, 저 킬러 완전히 '존 윅'이네"라고 말할 정도로 존 윅은 킬러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40대 후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킬러를 연기하게 된 배우 키아누 리브스는 1980년대부터 연극과 TV, 영화, 광고를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선보였다. 그리고 <엑설런트 어드벤처>와 <우리아빠 야호> 등 청춘물 및 코미디 장르에서 강세를 보이던 키아누 리브스는 1991년 이 작품을 통해 멋진 상남자로 거듭났다.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고 패트릭 스웨이지와 연기호흡을 맞췄던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폭풍 속으로>였다.
 
 <폭풍 속으로>는 패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의 리즈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다.
<폭풍 속으로>는 패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의 리즈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다.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짧지만 화려했던 패트릭 스웨이지의 전성기

1952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난 스웨이지는 발레리나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비롯해 다양한 춤을 배우다가 1979년 배우로 데뷔했다. <레드 던>과 <아웃사이더>,<지옥의 7인> 등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경력을 쌓던 스웨이지는 1985년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 <남과 북>에서 주인공 어리 메인을 연기했다. <남과 북>은 국내에도 방영되면서 스웨이지의 얼굴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패트릭 스웨이지라는 배우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영화는 1987년에 개봉해 600만 달러의 제작비로 2억1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영화 <더티 댄싱>이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춤과 음악을 통해 꽃 피는 두 남녀의 고난과 사랑을 그린 로맨스 영화 <더티 댄싱>에서 댄스교사 자니 캐슬을 연기한 스웨이지는 단숨에 섹시스타로 도약하며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부쩍 끌어 올렸다.

<더티 댄싱> 이후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기대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던 스웨이지는 1990년 또 한 편의 '인생작'을 만났다. 199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과 각본상 수상작이자 세계적으로 5억57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던 판타지 로맨스의 명작 <사랑과 영혼>이었다. <사랑과 영혼>은 국내에서도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153만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스웨이지는 <사랑과 영혼> 이후 곧바로 떠오르는 신예스타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폭풍 속으로>에 출연해 '흥행 2연타'에 성공했다. 1992년 롤랑 조페 감독의 <시티 오브 조이> 역시 흥행성적은 다소 아쉬웠지만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스웨이지는 높은 이름값에 비해 연기 폭이 넓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었고 이는 작품선정에 있어서 꾸준히 걸림돌로 작용했다. 실제로 스웨이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더 이상 흥행작을 내놓지 못했다.

2003년 <더티 댄싱2>와 2004년 <더티 댄싱-하바나 나이트>에 출연하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스웨이지는 2008년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스웨이지는 치료 중에도 드라마 <비스트>에 출연하는 등 병마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2009년9월 향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웨이지는 생전 술은 즐기지 않았지만 40년 이상 흡연을 했을 정도로 애연가였다.

<폭풍속으로>, 형사물과 스포츠물 사이
 
 서핑과 스카이 다이빙 장면이 나오는 <폭풍 속으로>가 특별관에서 개봉했다면 더욱 좋은 성적을 올렸을 것이다.
서핑과 스카이 다이빙 장면이 나오는 <폭풍 속으로>가 특별관에서 개봉했다면 더욱 좋은 성적을 올렸을 것이다.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폭풍 속으로>는 신입 FBI수사관 조니 유타(키아누 리브스 분)가 은행강도 무리가 서퍼들이라는 단서를 발견하고 범인들을 잡기 위해 서퍼 무리에 들어가게 되는 일종의 '언더커버 형사물'이다. 잘생긴 외모와 언변으로 여성서퍼 타일러(로리 페티 분)에게 서핑을 배운 조니는 독보적인 서핑실력을 가진 서퍼무리의 리더 보디(패트릭 스웨이지 분)를 알게 되고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서핑은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지만 당시만 해도 서핑을 소재로 한 영화는 관객들에게 상당히 낯설었다. 하지만 <폭풍 속으로>는 서핑이라는 다소 낯선 소재에 언더커버 형사물이라는 소재를 결합해 평소 서핑을 접해보지 않은 관객들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만들었다. 특히 보디가 엄청난 높이의 바다로 뛰어드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명장면이다.

<폭풍 속으로>는 여성감독 캐서린 비글로우가 연출했다. 비글로우 감독은 훗날 <허트 로커>나 <제로 다크 서티> 같은 전쟁 및 군사영화를 만든 감독답게 남자들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게 연출했다.

<폭풍 속으로>에서 은행강도단은 미국의 전직 대통령 가면을 쓰고 범행을 저지른다. 이들은 진짜 총을 들고 은행 안에 있던 직원과 고객들을 위협하지만 영화 후반 한 장면을 제외하면 실제로 총을 쏘진 않는다. 전직 대통령 가면을 쓰고 은행을 터는 강도단은 2011년에 출시된 게임 <페이데이:더 하이스트>에서 오마주되기도 했다. 2001년에 개봉한 영화 <분노의 질주> 역시 언더커버 형사물로서 <폭풍 속으로>와 이야기 전개가 매우 흡사하다.

<폭풍 속으로>는 지난 2016년 미국과 중국의 합작영화로 15년 만에 <포인트 브레이크>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하지만 1억5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포인트 브레이크>는 중국시장에서 39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리고도 세계적으로 1억3300만 달러를 기록하는데 그치며 제작비조차 회수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키아누 리브스의 꽃미남 시절
 
 키아누 리브스는 <폭풍 속으로>에서 20대 시절의 꽃미모를 선보였다.
키아누 리브스는 <폭풍 속으로>에서 20대 시절의 꽃미모를 선보였다.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폭풍 속으로>는 패트릭 스웨이지가 배우로서 정점에 있을 때 찍은 영화지만 키아누 리브스에게는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키아누 리브스는 <폭풍 속으로>에서 수사를 위해 서핑을 시작했다가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가 된 풋볼선수 출신의 FBI요원 조니를 연기했다. 키아누 리브스는 1994년 <스피드>를 통해 자신의 첫 번째 '메가 히트작'을 만들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리썰 웨폰>과 <언더씨즈> 등에서 인상적인 악역연기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 게리 부시는 <폭풍 속으로>에서 조니 캐슬의 FBI 선배 요원 안젤로 페퍼스를 연기했다. 악역을 소화했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폭풍 속으로>에서는 후배인 조니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착한 선배로 나온다. 하지만 범죄영화의 착한 조연형사나 요원들이 대부분 그렇듯 안젤로 역시 영화 후반 등에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난다.

<폭풍 속으로>에서 타일러 역의 로리 페티는 영화 속 실질적인 홍일점 역할을 했다. 조니에게 서핑을 가르쳐 주면서 조니와 가까워진 타일러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조니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물론 타일러를 유혹하기 위한 조니의 거짓말이었다). 타일러는 영화 중반 조니의 지갑에서 FBI신분증을 발견한 후 심한 배신감을 느끼지만 목숨 걸고 자신을 구하러 온 조니를 본 후 그의 사랑을 깨닫는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폭풍속으로 캐서린비글로우감독 고패트릭스웨이지 키아누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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