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의 하루> 스틸컷
(주)영화제작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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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연기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는 이것이 합리적인 추측이라는 데 더욱 힘을 싣는다. 이 부분은 의주의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그는 심장이 좋지 않아 술과 담배를 금지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를 처음 만나러 오는 상국이 양주와 담배를 선물로 사 올 정도로 애연가 겸 애주가였던 의주다. 남희가 사 온 무알콜 맥주를 마시며 진짜 맥주와 똑같다며 너무 좋다고 말했던 이유다. 하지만 이후 상국과의 대화에서 그는 진실함과 솔직함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그에게 있어 무알콜 맥주는 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대리하는 비겁한 거짓에 가깝다.
지수로부터 연기에 대한 조언을 받은 상원 역시 동일한 맥락에 대해 강조한다. 진짜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외면에 씌인 거짓된 것들을 모두 벗겨내야 한다고 말이다. 가식과 허식과 같은 것들이다. 의주의 경우처럼 실제적인 상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두 사람 모두가 많은 지점을, 행동뿐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까지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상국과 남희가 떠나고 홀로 옥상에 올라 의사의 금지 사항에 해당되었던 술과 담배를 꺼내놓는 의주의 모습은 그런 태도를 견지하고자 하는 선언과도 같다.
이처럼 두 이야기를 하나의 교차점 위에 교묘하게 얹어놓은 감독의 시도에서 가장 빛이 나는 부분은 이를 통해 어떤 특정한 결과를 도출하고자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두 사람의 관계나 두 이야기의 하루에 대한 추측과 같은 확정적인 지점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역시 스크린 너머의 공간에 묻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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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작품에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작품의 이야기 속에 자신을 투영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지다. 배우와의 사이에서 형성된 개인사가 세상에 공개되고 난 이후 그의 작품은 더 이상 스크린 너머의 것만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기억이 맞다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이후다. 몇몇 작품들은 그의 뮤즈가 여전히 극 속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또 다른 작품들은 현실의 문제를 극 중에 삽입하려는 의도처럼 보이는 장치들이 두드러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관객이 추측 가능한 지점의 모호한 지점에 대해 직접 매듭을 짓지 않는 스타일이 한몫을 더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상원의 대사가 그 시작점이다. 라면에 고추장을 풀어 먹는 특이한 습성을 의주가 보여준 다음 장면에서 상원 역시 동일한 행동을 취한다. 이 행위가 그리 보편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두 사람이 모종의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 '가끔 이렇게 먹게 되더라. 나 아는 사람이 맨날 이렇게 먹었어. 있어, 그런 사람'이라는 그녀의 말은 대사 속 '아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의주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지점이 된다.
이 외에도 굳이 기주의 성을 홍 씨로 설정했다던가, 이혼하면서 엄마 쪽으로 갔다는 딸을 언급한다던가 하는 모든 부분이 감독의 사생활과 부합한다는 점은 극 중 두 사람이 현실의 어떤 인물로 모델링 되었는지 상상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만약 이 설정이 감독의 의도와 맞닿아 있다면 영화의 타이틀인 '우리의 하루'가 의미하는 우리라는 단어는 꽤 많은 대상을 지칭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