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면상> 스틸컷
영화 <면상>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1.
<면상>
한국 / 2021 / 24분
감독: 권다솜, 백선영

가까운 사람의 상실 이후 남겨진 이들이 경험하는 슬픔은 절차와 과정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고인을 안치할 방법과 장소를 정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빈소를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여러 선택과 결정들 사이에도 애도를 위한 감정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림자처럼 짙게 엉겨 붙지 않는다. 표면의 장력을 흔드는 슬픔은 그의 빈자리를 정리하고 생의 자리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조각들을 매만지는 순간 넘쳐흐르기 시작한다.

권다솜, 백선영 감독의 영화 <면상(面像)>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를 앞둔 남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생 애일(남능미 분)과 서로의 안부를 묻는 통화를 나눴을 정도로 건강했던 아버지 죽음. 영정 사진조차 준비하지 못한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남겨진 이들이 떠나간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게 되는지, 또 슬픔의 감정이 그 과정의 어떤 지점에서 시작되는지 그리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아들 겨진(윤경호 분)과 딸 은자(민효경 분)를 각기 다른 장소와 상황에 놓고 있다는 점이다. 연기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아들 겨진은 아버지가 홀로 살았던 집을 찾아 그의 사진을 찾고, 딸 은자는 이제 막 차려지기 시작한 빈소에 남아 손님맞이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는 장면이다. 물론 텅 빈 영정의 자리를 뒤로 한 채로다. 내러티브적으로는 장례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필요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매개로 두 인물과 공간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습이다.

다만 이 작품이 두 공간을 나누고 교차하면서까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제 세상을 떠난 존재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심리적인 연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집안을 뒤져보지만 마땅한 사진 하나 나오지 않는 아버지의 공간과 썰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찾아오는 사람이 적은 빈소의 모습. 영화는 이를 두고 '가족들과도 왕래를 끊고 홀로 지내왔다'는 정도의 직접적인 표현도 쉽게 꺼내지만, 이를 바라보고 직접 경험하고 있을 극 중 인물들의 심리는 표현처럼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유품은 대상의 삶 속에 감춰져 있던 부분들까지 선명하게 그려내는 법이고, 이를 매만지며 그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고 품게 되는 것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이 영화에서는 방안 깊숙한 곳에 놓인 작은 상자 속에서 아들 겨진이 발견하게 되는 오래된 영화 포스터와 비디오테이프 역시 이에 해당된다. '면상(面像)'이라는 제목의 흑백 영화 속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살아생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의 한 부분이자 외로움이었을 자리다. 아버지의 사진 대신 영정 앞에 놓인 비디오 속에서 딸 은자 역시 처음으로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도 모른 척해 왔던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감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처음 만지는 그의 조각 위 생경한 질감과 온도.

이제 아버지의 영정 앞에는 그들 역시 처음 마주하는 젊은 시절의 그가 움직이고 있다. 면상(面像), '얼굴의 생김새'로만 말하자면 그들에게도 낯선 아버지의 모습이다. 이 자리에 동생 애일이 말하던 멀끔한 빈소를 위한 준비나 손님을 위한 대접은 놓일 공간이 없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이해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일 테니 말이다. 진짜 슬픔 역시 그제야 시작될 것이다.
 
 영화 <도시락> 스틸컷
영화 <도시락>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2.
<도시락>
한국 / 2021 / 19분
감독: 오한울

눈이 보이지 않는 누나 유정(김나연 분)을 대신해 집안일을 돌보는 동생 유안(구준우 분). 누나의 끼니까지 챙기며 두 사람의 몫을 보살피고자 하지만 유정은 그런 동생의 마음이 미안하기만 하다. 자신을 위해서 뭘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며 괜한 타박을 한 이유다. 아직 초등학생인 동생이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인 토토로를 좋아하는 아이일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안에게도 누나를 대신해 집을 돌봐야 할 까닭이 있다. 출장으로 집을 떠난 아빠는 두 사람만 남았을 때는 자신이 누나를 대신해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영화 <도시락>은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을 마음에 안고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누나 유정과 그런 누나를 대신해 두 사람의 몫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생 유안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어른의 보살핌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두 아이의 위치를 전환시켜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쉽게 두드러지지 않는 마음의 모양을 포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영화가 마련한 장치는 전환된 두 사람의 자리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음으로써 반드시 누나가 동생을 돌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 누나 유정이 갑작스러운 학교 급식 문제로 인해 동생 유안의 도시락을 챙겨야만 하는 상황에 놓는 일이다.

일반적인 상황과 달리 누나와 동생의 위치가 바뀌어있던 관계의 재정렬은 감춰져 있던 인물의 감정을 외부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수돗물에 이상이 생겨 학교의 급식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부탁할 사람이라고는 누나 밖에 없는 동생의 미안함과 항상 도움만 받았던 누나의 책임감 같은 것들. 이는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배달 음식 하나만 보내달라는 유안의 모습과 어떻게든 직접 만든 도시락을 완성해 보려는 유정의 행동으로 발현된다. 보이지 않는 대신 맛과 촉각에만 의지해 재료를 구분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은 물론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어떤 제약과 한계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현실적인 문제를 함부로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생이 좋아하는 인형을 곁에 두고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하지만 유정의 도시락은 노력에 비해 아쉬움이 남고, 동생의 학교에서 만난 친구 엄마의 가벼운 배려와 응원의 말은 그렇지 않아도 부끄럽던 도시락 가방의 존재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지금 동생에게 필요한 엄마의 자리를 자신이 모두 채워주지 못한다는 마음이 다시 뾰족하고 쓸쓸하게 돋아난다.

"마음은 더 큰데 너무 형편이 없어서..."

누나로부터 햄버거를 건네받은 유안은 집으로 돌아와 부엌에 남겨져 있던 요리의 흔적과 누나의 도시락을 마주하게 된다. 다른 곳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위하던 마음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만난 마음은 더 이상 위축되지 않는다. 누나의 손가락을 쥐고 토토로를 닮은 주먹밥의 구석구석을 매만지며 어떤 모양인지 설명해 주는 동생의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이 오누이가 가진 마음의 형태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색과 크기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2022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리플레이' 상영작입니다. 그동안의 기획전을 통해 소개된 작품 외에 별도로 선정된 72편의 작품이 2023년 11월과 12월 두 달에 걸쳐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해당 영화는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면상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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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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