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면상>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1.
<면상>
한국 / 2021 / 24분
감독: 권다솜, 백선영
가까운 사람의 상실 이후 남겨진 이들이 경험하는 슬픔은 절차와 과정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고인을 안치할 방법과 장소를 정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 빈소를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여러 선택과 결정들 사이에도 애도를 위한 감정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림자처럼 짙게 엉겨 붙지 않는다. 표면의 장력을 흔드는 슬픔은 그의 빈자리를 정리하고 생의 자리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조각들을 매만지는 순간 넘쳐흐르기 시작한다.
권다솜, 백선영 감독의 영화 <면상(面像)>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를 앞둔 남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생 애일(남능미 분)과 서로의 안부를 묻는 통화를 나눴을 정도로 건강했던 아버지 죽음. 영정 사진조차 준비하지 못한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남겨진 이들이 떠나간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게 되는지, 또 슬픔의 감정이 그 과정의 어떤 지점에서 시작되는지 그리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아들 겨진(윤경호 분)과 딸 은자(민효경 분)를 각기 다른 장소와 상황에 놓고 있다는 점이다. 연기할 수 없는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아들 겨진은 아버지가 홀로 살았던 집을 찾아 그의 사진을 찾고, 딸 은자는 이제 막 차려지기 시작한 빈소에 남아 손님맞이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는 장면이다. 물론 텅 빈 영정의 자리를 뒤로 한 채로다. 내러티브적으로는 장례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필요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매개로 두 인물과 공간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습이다.
다만 이 작품이 두 공간을 나누고 교차하면서까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제 세상을 떠난 존재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심리적인 연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집안을 뒤져보지만 마땅한 사진 하나 나오지 않는 아버지의 공간과 썰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찾아오는 사람이 적은 빈소의 모습. 영화는 이를 두고 '가족들과도 왕래를 끊고 홀로 지내왔다'는 정도의 직접적인 표현도 쉽게 꺼내지만, 이를 바라보고 직접 경험하고 있을 극 중 인물들의 심리는 표현처럼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유품은 대상의 삶 속에 감춰져 있던 부분들까지 선명하게 그려내는 법이고, 이를 매만지며 그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고 품게 되는 것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이 영화에서는 방안 깊숙한 곳에 놓인 작은 상자 속에서 아들 겨진이 발견하게 되는 오래된 영화 포스터와 비디오테이프 역시 이에 해당된다. '면상(面像)'이라는 제목의 흑백 영화 속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살아생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의 한 부분이자 외로움이었을 자리다. 아버지의 사진 대신 영정 앞에 놓인 비디오 속에서 딸 은자 역시 처음으로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도 모른 척해 왔던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감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처음 만지는 그의 조각 위 생경한 질감과 온도.
이제 아버지의 영정 앞에는 그들 역시 처음 마주하는 젊은 시절의 그가 움직이고 있다. 면상(面像), '얼굴의 생김새'로만 말하자면 그들에게도 낯선 아버지의 모습이다. 이 자리에 동생 애일이 말하던 멀끔한 빈소를 위한 준비나 손님을 위한 대접은 놓일 공간이 없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이해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일 테니 말이다. 진짜 슬픔 역시 그제야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