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한 장면MBC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떤가요?
"육군사관학교 내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슈가 있었는데요. 그 이슈를 잘 정리하고, 흉상 이전에 대한 찬반 입장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그 지점들이 잘 정리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등 역사 문제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의 외손자인 정철승 변호사와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이 윤기섭 선생님과 지청천 장군의 육사 명예졸업장 반납하러 간다는 뉴스를 봤어요. 독립운동한 분들의 명예졸업장을 반납한다는 일은 큰 사건이고, 이와 맞물려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 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에 취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역사 문제에 관심이 있었나요?
"평소에 관심이 있었어요.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라고 한다거나, 우리나라의 건국을 어느 시점으로 볼 지는 그래서 중요하죠. 그래서 이번 아이템은 역사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 사회문제이기도 해요. 역사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뛰어들었다기보다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이슈라고 판단되어 취재하게 됐습니다."
- 오늘(25일)은 홍범도 장군 서거 80주기잖아요. 우연인지 아니면 맞춘 건가죠?
"처음 아이템을 잡을 때 홍범도 장군에 맞춰서 잡은 건 아니에요. 5인의 독립운동가 흉상을 이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홍범도 장군만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즈음에 홍범도 장군 서거일이 방송 다음 날인 8월 25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더욱더 이 방송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 프롤로그에서 극우 유튜버와 시민들의 시위를 교차편집하셨는데.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반대를 위한 걷기대회가 노원구에서 열렸어요. 노원구에는 육군사관학교가 있기 때문에, 노원구에서 한 건데요. 흉상 이전 반대하는 시민들이 육사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찍고 있었어요. 육사에 다다르는 순간, 극우 유튜버가 흉상을 이전하라고 소리를 내더라고요.
찬반이 나뉘는 이슈인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육군사관학교 앞에서 찬성과 반대 측이 첨예하게 대립할 줄은 몰랐어요. 경찰들도 긴장했는지 제가 유튜버 쪽으로 가는 걸 막더라고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 논쟁을 그날 육사 앞에서 가장 잘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프롤로그에 교차하면서 편집했어요. 오프닝도 육사 앞에서 시작했고요."
-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무장 독립투쟁 및 독립운동에 대해서 논문이나 책을 읽었고요,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료를 받아 와 공부도 했고요. 특히MBC 내에 홍범도 장군과 관련 오래된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당시 봉오동 전투에 참전했던 분들의 목소리도 담겨 있었거든요. 더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는데, 시간 관계상 담지 못한 게 무척 아쉬워요."
- 홍범도 장군은 어떤 인물인가요?
"제가 국사책에서 보고,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서 본 것에 따르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무장투쟁 독립운동가이죠. 머슴으로 태어나 의병이 되고, 독립군이 되어 28년 동안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고,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에 잃은 비운의 인물이기도 해요."
- 박경석 육군 준장은 자신을 보수라고 하면서도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을 수 없다고 하네요.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6.25전쟁에 참여한 보수주의자이자 역사 연구가예요. 북한군과 싸웠기 때문에, 철저한 보수주의자이죠. 근데 그분은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라며, 흉상 옮기는 건 역사에 대한 무식함이라고 하셨어요. 그 당시의 공산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는 다르기 때문이에요. 북한 정권 수립 전에, 대중 정당이었던 공산당에 가입한 것이 문제라면, 역사의 순환 속에서 모든 것을 문제제기 할 수 있다고 보신 거예요."
- 자유시 참변에 홍범도 장군이 가담했다는 건 사실이 아닌 거죠?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고 보는 공식적인 문건이나 자료는 나오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고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죠. 홍범도 장군을 연구해 온 반병률 교수님에 따르면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에 가담한 정황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외에 많은 분들도 그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 홍범도 장군이 순국했을 때 레닌이 부고란에 우호적으로 써서 공산주의자 아니냐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레닌이 부고란에 쓴 게 아니고요. <레닌기치>(현 고려일보)에 작성된 부고 기사에 관련 내용이 나옵니다. 1943년 홍범도 장군의 사망을 알리면서, '레닌-스탈린당의 충직한 당원'이라고 해서 논란이 됐는데요. 이는 문맥을 좀 파악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반병률 교수님에 따르면, <레닌기치>는 공산당이 중심이 되는 나라에서 발행되는 신문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해요. 공산당이 중심이 된 나라는 보통 신문이 이념의 홍보지로 많이 쓰였어요. 홍범도 장군이 고려인 사회에서 명망이 높았기 때문에, 그의 부고 기사에 당의 홍보를 더 하는 것은 이념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거예요. 이건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봐야지, 현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아요."
- 독립기념관에 있는 수장고로 이전 하려고 하는데 수장고는 한마디로 창고잖아요. 창고로 흉상을 옮긴다는 것 자체가 잘 이해가 안돼요.
"국감에서 독립기념관장이 수장고로 이전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님의 말에 따르면 독립기념관에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전시할 자리가 마땅히 없어 보이기는 해요.
수장고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인 곳이에요. 저희도 밖에서 살짝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창고처럼 생겼어요. 이 창고 안에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넣어놓는다면, 일반 관람객은 흉상을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 육사에 흉상 놓은 것에 정부나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일방적으로 했다고 하는 것 같던데 그게 아닌가 봐요?
"저희가 만난 제보자, 즉 흉상을 제작할 때 참여한 육군 관계자에 따르면. 흉상 이전은 육사 내에서 육사 교장과 육사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요.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 행동이었다기보다는 육사 내부의 움직임과 외부 역사 단체들의 적극적인 자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 흉상 이전 계획이 알려진 게 8월 하순이었고 정부는 결정된 게 없다고 한 거로 아는데 업체와 계약까지 한 거면 국민을 우롱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감정적인 단어를 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8월 24일에 흉상 이전을 위해 외부 업체와 계약 했죠. 그러나 이 일이 밝혀지기 전 국방부에서는 결정된 게 없다고 했죠. 계약한 사실을 몰랐던 건지, 숨기려는 건지는 모르지만. 국방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발표한듯 보입니다."
정부의 말바꾸기
- 타임라인을 보면 올해 8월에 흉상 이전 작업이 급하게 추진된 것 같아요.
"8월 24일을 기준으로 급박하게 일이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육사 출신이자, 4성 장군 출신인 김병주 의원에 따르면 국방부나 육사가 이렇게 움직이는 건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해요."
- 처음엔 육사 내에서 옮긴다는 거였다가 나중에 육사 밖으로 바뀐 건가요?
"저희가 확보한 공문에 따르면, 육사에서 육사 육군박물관으로 흉상들을 옮기려고 해요. 그 이후, 독립기념관으로 옮기려고 하죠. 그러나 저희가 확보한 공문 외에 다른 정보들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단언하기에는 조심스럽네요."
- 홍범도함 명칭과 도로명도 바꾸라는 시위가 있나 봐요?
"홍범도함과 관련한 시위는 취재하지 못했고요.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홍범도장군로와 연관된 시위를 취재했습니다. 홍범도장군로 이름 변경을 주장하는 시위였어요. 도로명을 바꾸라는 것이었는데요. 그 이유로는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해당 지자체인 유성구청장에게 물으니, 유성구청장은 도로명을 바꿀 생각이 없었어요.
현재 홍범도장군로는 실제 사용하는 도로가 아니라, 명예 도로에요. 주소지로 사용하고 있지 않고, 이름만 붙여진 거죠. 현충원로의 일부에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딴 명예 도로가 생긴 것이고, 행정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게 유성구청장의 입장이었습니다."
- 건국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왜 건국절을 주장할까요?
"일각에서 우리나라가 1948년 8월 15일 건국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되면, 1945년 일제에 독립하고 1948년까지 3년의 시간은 건국하기 위해 노력한 기간이 돼요. 공산주의와 싸운 기간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렇게 했다고 보면 그전에 친일 역사보다는 그 바로 직전에 반공과 싸웠던 역사가 더 강조되는 거예요. 왜냐면 반공할 때 친일파들도 함께 반공했기 때문이에요. 반면,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따라 우리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본다면, 독립운동이 우리의 정통성이 되는 거죠. 즉, 건국과 임시정부, 각각 주체를 어디로 보느냐의 차이가 있는 거죠."
- 만약에 건국이 1948년에 한 것으로 되면 식민지 불법성이나 위안부 문제 같은 게 인정 안 되는 건가요?
"우리나라 건국을 1948년으로 하면 그 이전에는 사실 우리나라가 없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일제에 의한 강제 점령이나 그걸로 인해 피해받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배상하라고 요청할 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1948년 건국절은 일제 강점에 대해 항의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거예요. 이종찬 광복회장님께서 프로그램에서, 사법 체계를 흔드는 일이라고 비판한 것도 그 맥락이죠."
-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육군사관학교에 흉상이 있죠. 흉상을 촬영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거기가 군사시설이다 보니까 촬영이 안 되는 점이 제일 답답했어요.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흉상과 같은 모습의 흉상이 국방부 청사에 있다고 해서, 촬영 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했죠. 흉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실제로 보고 싶었지만, 실제로 보지 못했어요. 실제로 보지 못한 것을 취재해야 한다는 것이 답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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