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에서 세미 역을 맡은 배우 박혜수.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말투는 차분했고,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영화 이후에도 끝까지 마음을 다하겠다 다짐한 듯 말이다. 영화 <너와 나>는 그만큼 박혜수라는 사람에겐 특별해 보였다. 18일 오후 서울 서교동 <오마이뉴스> 사옥을 찾은 박혜수는 영화 속 세미처럼 고스란히 마음을 꺼내 보이는 모습이었다.
섣부른 위로가 상처는 되지 않을지, 아름다운 세미와 하은(김시은)의 관계가 혹여나 누군가에겐 미워보이진 않을지. 박혜수는 촬영 전에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두 고교생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아우르는 주제 의식은 결코 가볍거나 쉽게 다룰 수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너와 나>를 퀴어에 추모의 마음을 담은 영화로만 소개할 수 없는 이유다.
관계 속에서 세미를 찾아내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함께 출연한 인연으로 조현철 감독은 박혜수 측에 시나리오를 보냈다고 한다. 연기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단편 영화를 연출했던 그의 첫 장편 영화가 될 <너와 나>를 두고 박혜수는 넓은 차원에서의 사랑을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참사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 감독님이 엄청 세심하게 고민한 게 느껴졌다. 세미와 하은의 사랑도 정말 아릅답게 보였다. 꼭 참여하고 싶었다. 제 개인에게도 치유과정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작품에 말대로 박혜수는 세미가 됐다. 본인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고 느끼며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많이 반영했다고 한다. 영화 속 대사도 숱한 리허설 과정에서 배우들이 직접 내뱉는 말들을 살려낸 결과였다. 그렇게 현실감 있는 세미가 탄생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 지금까지 친한 무리가 있는데 그 무리에 하은이 같은 친구도 있다. 왜 그때는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토라지고, 시시콜콜한 것들로 웃고 그러잖나. 졸업 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그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더라. 거기서 나오는 제 모습을 많이 가져오려 했다. 친구들 앞에서 제 말투, 행동, 감정을 관찰했다. 편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 제 모습들 말이다.
촬영은 한 달 정도 했는데 그 전에 리허설을 일주일에 세 번씩 했다. 리허설을 안 할 때는 사무실에서 감독님, 시은 배우랑 수다 떠는 시간을 가졌다. 그땐 별 얘기가 아니라 생각했는데 그게 다 영화에 도움이 됐더라.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분들의 마음이 담겼고, 그 애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물론 소재나 주제면에서 어렵게 다가온 건 사실이었다. 혹여나 추모의 마음이 빛바래는 건 아닐지, 자기 감정만 내세우는 세미가 미워 보이진 않을지 배우 입장에선 걱정할 만한 것들이었다. 박혜수는 내심 사랑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위로 메시지도, 세미와 하은의 감정도 모두 사랑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연기하면 할수록 제겐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시나리오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제가 놓치거나 의식하지 못했던 사랑을 많이 찾게 됐다. 가족에게조차 표현하지 못한 것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제 마음들 말이다. 여기에 더해 꼭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에 대한 마음도 사랑일 수 있겠더라. 내가 아닌 타인, 다른 대상에게까지 그 사랑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를 아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