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초면에 발생한 분쟁을 조정하는 세 가지 질문>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1.
<초면에 발생한 분쟁을 조정하는 세 가지 질문>
한국 / 2023 / 15분
감독 : 은고
출연 : 김소월, 이천은
이른 아침 운동장에서 초면인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인다. 멀리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이들은 두 남녀의 모습이 헤어진 연인의 다툼이라고 결정짓는다. 영화도 시작부터 이들의 관계나 싸움의 원인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두 사람은 다음 장면에서 바로 '초면 분쟁 조정위원회'라는 존재의 이유에조차 의문이 드는 위원회에 회부되고, 3주간의 분쟁 조정 프로그램에 넘겨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담당자의 무책임하고 건조한 태도 속에서 사랑과 삶에 대한 세 가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초면에 발생한 분쟁을 조정하는 세 가지 질문>은 제목 그대로 초면에 만난 두 사람의 다툼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따르는 이야기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영화 속에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조금도 예측하기 어렵지만, 영화는 의외로 담담하고 관조적인 태도로 두 사람의 삶을 가볍고도 진중하게 들여다본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세 가지 질문, 우리의 삶에 사랑과 애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와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기억은 무엇인지, 또 우리의 인생관에 대한 물음을 통해서다.
영화의 시선이 놓여 있는 가장 중요한 자리는 결국 타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공감이 없이 그 상태에 대해 판단하고 정의하는 일이다. 영화의 처음에서 등장했던 두 사람이 멀리서 다툼을 벌이는 두 남녀의 관계와 언쟁의 이유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끼리 결정짓고 이해했던 장면은 어쩌면 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요약이자 복선에 해당한다. 그 대상이 되는 두 남녀 역시 자신의 가치관에만 무게를 둔 채 서로의 삶을 판단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너무도 다른 각자의 삶, 그로 인한 인생관의 차이는 타인의 행동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며 영화는 그 틈을 파고든다.
운동장 한가운데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본 남자(이천은 분)의 행동 때문에 여자(김소월 분)의 항의를 받고 갈등을 겪게 되는 영화 속 사건 자체는 모델링을 위해 최대한으로 간략화된 상황 설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화는 각자가 세 질문에 대한 답을 꺼내는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지난 삶 속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며 논의를 확장시킨다. 조금 더 포용하고 사랑하면 세상이 정말 더 나아질 것인가 하는 문제와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편견이나 이기심, 자신의 나쁜 심정과 같은 것들과 홀로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향해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처음보다는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 사람이 침묵의 화해를 건네고 헤어진다. 줌 아웃이 되는 화면을 따라 멀 위치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내화면 속으로 들어온다. '저 커플 정말 살벌하게 싸운다.' 영화의 처음에서처럼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라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들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