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더 비스트>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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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박이 어떤 현실과 이어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로 다른 현실의 연결과 불안은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은 모습으로 시작과 함께 관객들에게 던져진다. 1903년을 배경으로 한 귀족 파티에서 만나게 되는 가브리엘과 루이의 모습을 통해서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어렴풋이 갖고 있는 어린 시절의 어떤 불안한 느낌, 스스로를 몰락시키고 소멸시킬 것 같은 누군가와의 관계 대한 이야기를 루이와 함께 나눈다. 두 사람의 밀회는 그녀의 남편이 소유하고 있는 인형 공장으로 이어지고, 세 시대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첫 시작이 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 속 세 번의 시간대 속에서 핵심 사건이자 비극으로 존재하는 설정들이 모두 현실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거나 예상되는 일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 중 1903년에서 벌어지는 대홍수는 1910년 파리 대홍수를, 2014년에서 일어나는 지독한 스토킹과 여성 범죄는 2014년의 엘리엇 로저(Elliot Rodger) 총기난사 사건을, 마지막으로 2044년의 인공지능과 인간 개조 프로젝트는 현재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AI 문제다.
중점은 동시대와 연결성에 있다. 우리가 개념적으로 과거나 미래라고 부르는 시점 역시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현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과거는 조금 전의 현재, 미래는 잠시 후의 현재로도 치환이 가능하다. 또한 새로운 세대와 시대가 도래할 때마다 모두가 장미빛 미래를 예상하고 희망찬 관측을 내놓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사실적인 어려움들이 각각의 시대에도 존재한다. 감독의 극 중 세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으며, 인형 공장 내부에서 맞이하는 대홍수와 그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탈출 기회는 이 모든 비극의 전초이자 시작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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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시대 사이의 연결성은 다른 지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루이의 제안으로 찾아가게 되는 1903년의 점술가와 우연히 접속하게 되는 2014년의 포츈 텔러가 대표적이다. 조금 더 넓게 보면 과거의 흔적을 제거하고자 하는 인공지능 역시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강하고 생생하다는 쪽의 두 과거와 달리 미래의 슬픔과 고통 때문에 현재에서 미리 아파할 필요가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괴로움을 제거하라고 종용하는 미래는 서로 다른 접근법을 갖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결국 연결성을 갖고 있음에도 개념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서로 다른 시점의 설정은 연결성이 직진성 혹은 영원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1903년의 루이가 2014년에 이르러 스스로가 비극 그 자체가 되는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나아가 이 모든 비극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이성만을 유지하라는 AI의 기계적 판단은 되려 역설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불확실한 감정과 결과를 알 수 없는 미래의 가치를 증폭시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