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유공자> 스틸컷
영화 <국가유공자> 스틸컷인디그라운드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노인 영춘(김삼일 분)은 6.25 전쟁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다. 나라를 위하여 공헌하거나 희생한 사람. 전쟁이 끝난 지 벌써 반세기가 다 되어가지만 그의 시간은 아직 그곳에 남겨져 있는 듯 보인다. 이제 또 쓰러지고 나면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의 자랑과도 같은 국가 유공 훈장만 바라보며 지나간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데 열중한다. 삶이 허락하는 주어진 시간을 거의 다 써버린 듯 머리가 하얗게 센 그의 마지막 꿈은 이제 호국원에 묻히는 것뿐. 남은 생을 모두 바꿔서라도 다른 참전용사들이 묻힌 국가의 품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과 명예를 안고 싶다.

영화 <국가유공자>는 6.25 전쟁에 참여했던 기억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노인 영춘이 호국원에서 잠들기를 바라며 안장 대상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여겨지던 그의 바람을 가족의 문제로까지 확장시켜 연결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를 통해 영화가 거시적인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국가유공자의 삶이 현재의 우리 사회와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가족, 국가유공자를 위해 작은 땅 하나 내어주지 않는 국가, 정장 위에서 홀로 생기를 잃어가는 오래된 훈장 사이에서 어느 자리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을까.

02.
극 중 영춘은 전형적인 인물이다. 가족과의 소통은커녕 자신의 과거에만 파묻혀 사는 인물. 전쟁에 참여했던 과거를 자신 인생의 가장 큰 영광과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니 그 배경 또한 짐작할 만하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위해 영정 사진을 찍으러 가는 날에도 그는 딱 그대로 움직인다. 아침 일찍부터 욕실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감고 전날 세탁소에 맡겨둔 양복을 비닐도 벗기지 않은 채로 소중히 들고 집을 나서고. 카메라 앞에서는 가슴팍에 녹슨 훈장 하나만을 끝까지 끌어올려 자신의 얼굴보다 더 잘 보이는 곳에 매단 모습이다.

아들 정대(박일용 분)는 그런 아버지가 갑갑하기만 하다. 곁에서 평생을 봐 왔을 모습이지만, 나이를 저렇게 드시고도 젊은 시절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본인은 물론 다른 가족들까지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그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자신이 능력이 좋아서 아버지가 원하는 모든 요구를 잘 들어줄 수만 있었더라도 그런 마음이 조금은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만이 삶의 전부이고 국가에 봉사하고 헌신했던 자신의 과거만이 스스로의 전부인 것처럼 구는 아버지 영춘을 이제는 바라보는 것도 어렵고 답답한 마음이다.

문제는 그런 영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호국원을 향한 그의 꿈은 번번이 실패를 하고 만다. 면사무소에서도 차라리 국가에 정식 소송을 진행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빠르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그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전쟁터에서 한번 실종되었다 복귀한 이력이 호국원 안장 심사 결과에서 결정적인 탈락 사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탓이다. 20일 이상 행방불명 상태로 기록이 되면 탈영으로 간주가 되는데, 영춘이 그런 경우로 기록되어 있고 이 경우에는 명예성 훼손으로 호국원 안장이 불가능하다는 국가 보훈처의 답변이다.
 
 영화 <국가유공자> 스틸컷
영화 <국가유공자>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3.
영화가 국가유공자 영춘의 억울한 사연을 위치시키는 곳은 과거의 문제를 현재의 규정과 법률로 들여다보는 자리다. 전쟁터에 나간 사실도 존재하고, 개인의 일탈로 인한 고의적인 탈영 사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전쟁터에서는 정신없는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전장을 이탈하거나 낙오되는 경우가 꽤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가 자신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역시 그 때문. 영춘은 자신이 그동안 국가로부터 훈장도 받고, 연금도 받아왔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국가가 마련해 놓은 규정과 법률이 당시의 모든 상황과 사정을 이해하고 포괄할 수 없는 상태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국가유공자인 영춘 개인의 문제에 해당된다. 이 문제는 손녀 다윤(류한빈 분)의 프랑스 유학과 가족의 선산인 강 건너 묫자리 이야기와 이어지며 가족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영춘이 호국원에 안장될 수 있어야 이 묫자리를 팔아 손녀의 유학비로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덩치를 키운 문제는 영화의 중심에 서는 인물을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잠시 이동시키는 역할도 함께 한다. 가족의 문제가 되면서, 묫자리를 팔지 않으면 어려운 형편에 딸의 유학을 장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역할과 묫자리를 판 상황에서 만약 영춘이 호국원에 가지 못하게 되면 아버지를 어디에도 모실 수 없게 되는 아들의 역할 사이에 아들 정대가 놓이면서다.

04.
"그거 팔면 아버지는 어디 묻힐 건데요?"

아버지에 대한 정대의 답답한 심정이 결국 외부로 표출되고 마는 데는 손녀 다윤의 사정을 듣고 난 이후 대책도 없이 선산을 팔겠다는 영춘의 태도가 있다. 막상 알아보니 생각보다 땅 크기도 작고 생각보다 돈이 되지는 않지만, 그 땅을 팔아도 된다는 근거가 자신은 어떻게 해서든 호국원에 갈 수 있으며 손녀가 가려는 프랑스가 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왔기 때문이라는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이유여서다. 아마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정대는 평생 봐왔을 것이고,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국가에 대한 충성만 안고 사는 아버지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테다.

그 기저에는 역시 오래된 사람으로 첫째는 그저 바쁜 사람으로만 인식하고 마지막까지 아무런 도움도 요청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둘째의 서운함도 있다. 아니, 자신보다 훨씬 더 여유 있게 살면서 아버지의 일은 나 몰라라 하는 형에 대한 원망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매일 마을의 소일거리를 찾아 일당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그가 매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행정 절차를 밟고 뒷바라지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춘을 등지고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덜 답답하고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었다면 아들인 자신이 편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이 또한 사랑임은 분명하다. 원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마음을 쉽게 놓지 못하는 모습을 도와주지도 못하고 지켜만 봐야 하는 일은 당사자만큼이나 힘들고 지치는 법이다.
 
 영화 <국가유공자> 스틸컷
영화 <국가유공자>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5.
국가와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아버지 영춘이 눈을 감던 날, 첫째 아들은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일을 남들에게 말하지 말자고 당부한다.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이기는 했지만 탈영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결코 떳떳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정대는 그런 아버지의 관을 감싸고 있던 태극기를 몇 번이나 풀었다 되감으며 최대한 빳빳하게 펼친다. 평생을 곁에서 지켜봐 왔던 아버지. 물론 답답하고 힘든 구석이 있었지만 자신마저 당당하게 보내드리지 못하면 그 평생의 의미가 퇴색되고 잊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이 장면에는 국가의 정책과 규정, 법률이 과거의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있는 동안 그 혜택을 받아야 할 당사자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다. 영화의 바깥에서 보자면,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참전군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위안부의 문제 역시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 시기는 다르지만 양쪽 모두 국가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며 피해를 입은 국민의 문제이며, 아직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나 해결은 요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연출 의도를 통해 박찬우 감독은 이 영화를 처음 만들게 된 동기가 지난 2019년 할아버지의 발인식에 있었다고 밝힌다. 할아버지의 관에 묶인 태극기를 고치며 (영화의 후반부 장면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 같다) 나눴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말 없는 대화가 궁금했고, 그런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이다. 이제 다시 궁금해진다.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감독은 두 분의 대화를 조금이나마 그려낼 수 있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열다섯 번째 큐레이션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때’ 중 한 작품입니다. 오는 2023년 9월 15일까지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인디그라운드 국가유공자 김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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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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