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유공자>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영화가 국가유공자 영춘의 억울한 사연을 위치시키는 곳은 과거의 문제를 현재의 규정과 법률로 들여다보는 자리다. 전쟁터에 나간 사실도 존재하고, 개인의 일탈로 인한 고의적인 탈영 사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전쟁터에서는 정신없는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전장을 이탈하거나 낙오되는 경우가 꽤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가 자신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역시 그 때문. 영춘은 자신이 그동안 국가로부터 훈장도 받고, 연금도 받아왔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국가가 마련해 놓은 규정과 법률이 당시의 모든 상황과 사정을 이해하고 포괄할 수 없는 상태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국가유공자인 영춘 개인의 문제에 해당된다. 이 문제는 손녀 다윤(류한빈 분)의 프랑스 유학과 가족의 선산인 강 건너 묫자리 이야기와 이어지며 가족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영춘이 호국원에 안장될 수 있어야 이 묫자리를 팔아 손녀의 유학비로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덩치를 키운 문제는 영화의 중심에 서는 인물을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잠시 이동시키는 역할도 함께 한다. 가족의 문제가 되면서, 묫자리를 팔지 않으면 어려운 형편에 딸의 유학을 장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역할과 묫자리를 판 상황에서 만약 영춘이 호국원에 가지 못하게 되면 아버지를 어디에도 모실 수 없게 되는 아들의 역할 사이에 아들 정대가 놓이면서다.
04.
"그거 팔면 아버지는 어디 묻힐 건데요?"
아버지에 대한 정대의 답답한 심정이 결국 외부로 표출되고 마는 데는 손녀 다윤의 사정을 듣고 난 이후 대책도 없이 선산을 팔겠다는 영춘의 태도가 있다. 막상 알아보니 생각보다 땅 크기도 작고 생각보다 돈이 되지는 않지만, 그 땅을 팔아도 된다는 근거가 자신은 어떻게 해서든 호국원에 갈 수 있으며 손녀가 가려는 프랑스가 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왔기 때문이라는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이유여서다. 아마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정대는 평생 봐왔을 것이고,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국가에 대한 충성만 안고 사는 아버지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테다.
그 기저에는 역시 오래된 사람으로 첫째는 그저 바쁜 사람으로만 인식하고 마지막까지 아무런 도움도 요청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둘째의 서운함도 있다. 아니, 자신보다 훨씬 더 여유 있게 살면서 아버지의 일은 나 몰라라 하는 형에 대한 원망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매일 마을의 소일거리를 찾아 일당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그가 매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행정 절차를 밟고 뒷바라지를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춘을 등지고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덜 답답하고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었다면 아들인 자신이 편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이 또한 사랑임은 분명하다. 원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마음을 쉽게 놓지 못하는 모습을 도와주지도 못하고 지켜만 봐야 하는 일은 당사자만큼이나 힘들고 지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