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루 반의 시간> 스틸컷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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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루이스를 인질로 삼고 있는 아르탄을 만나기 위해 루카스가 홀로 보건소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영화는 여러 문제를 동시에 터뜨리기 시작한다. 가족과 함께 떠나고 싶다는 남편과 달리 아내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문제가 하나. 이동을 위해 당장 차를 준비하라는 아르탄의 요구와 기동대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경찰 측 사이에 놓이게 되는 루카스의 문제가 또 하나다. 아직까지는 상해를 입은 사람이 없으니 경범죄에 해당된다며 남편을 설득해야 하는 루카스와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면서도 경찰을 심하게 자극하지 않아야 하는 아르탄 사이의 갈등 역시 여러 문제 가운데 하나가 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펼쳐놓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보건소 내부에서 차량 내부로, 차량 내부에서 다시 두 사람의 딸이 머물고 있는 루이스 부모의 차고 내부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한된 공간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된다. 공간의 제한적 상황에서는 확실한 갈등 구조와 핵심 사건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대화와 대화 사이에 개연성을 부여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지점으로 보인다.
물론 제한적인 공간의 활용은 이 작품과 같은 장르에서 많은 이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타이트한 프레임으로 인해 관객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긴장감을 느끼도록 유도할 수 있고, 극 중 인물들 사이의 호흡도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가져갈 수 있다. 이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마지막 장면을 제외한 모든 장면에서 세 사람 이상의 인물 구도가 형성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남편을 중심으로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경찰과의 대립에서도 모두 갈등 구조를 형성하며 영화는 극의 제약을 극복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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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여다보면 남편 아르탄은 의외로 유약한 면을 가진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그렇다. 준비해 온 총을 꺼내든 것으로 보아 범죄를 계획하고 아내를 찾아간 것은 사실이나,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나 상황에 대해서는 큰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 당장 총구가 눈앞에 와 있는 아내 루이스도 겁은 나는 모습이지만 담담한 태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이는데, 이 남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저격수를 두려워하며 온몸을 웅크리고 뒤따라 오는 경찰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내내 드러낸다.
자신이 아랍 이민자라는 사실에 대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열등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극 중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아내와 자신이 지금의 상황을 맞이한 것 역시 자신을 이민자라고 홀대하던 그녀의 부모님과 법원의 부당한 처벌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어디에서나 이민자의 삶이라는 것이 쉬울 리 없겠지만, 처음의 장면에서 보건소 안에서도 백인만이 아닌 다양한 인종이 함께 지내고 있는 장면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수준은 넘어서는 종류의 부정적 감정이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조금 더 타당해 보인다.
그의 이런 내면적인 요소들은 영화의 모든 장면에 투영되며 극 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이 극단적으로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심리로부터 기인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되려 일종의 두려움과 피해의식이 우발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것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큰 사건을 벌이고도 자신이 테러범으로 오인받는 것만큼은 두려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