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딩크족>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2.
"좋은 케이스 하나 만들어 봅시다."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해 딩크족이 가지는 두 가지 숙명 가운데 하나를 저버리게 된 부부는 자연스럽게 나머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처음부터 합의를 했듯이 아이를 최대한 빨리 지우고자 마음 먹지만, 이 상황을 잘 이용해서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자는 현숙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두 사람이다. 그녀의 제안은 어차피 아이를 지우기로 결심했으니 쌍둥이를 임신한 것으로 청약 신청을 넣는 방법이다. 더 높은 확률이 보장되는 다자녀 청약 케이스를 노리는 것이 목표. 아이를 지우는 일은 결과를 보고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숙은 아내가 다자녀를 임신 중이라는 서류도 만들어 온다.
결과는 성공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했지만 현숙은 두 사람에게 아파트 청약을 안겼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부부의 딜레마를 제시하는 것은 이 장면부터다. 기쁨도 잠시, 엄격해진 국가 규제로 인해 국토부 직원들이 청약 당첨 가정에 직접 인터뷰를 나올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들의 계획은 수정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제출한 서류를 보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직원의 방문이 있기 전까지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여야 한다(아이를 낳기 전에 인터뷰가 이루어질 테니 쌍둥이 문제는 임신한 모습만 보여주면 해결된다). 진짜 문제는 이제 9주 차에 접어들고 있는 아이 때문인데, 3개월이 지나면 낙태도 쉽지 않고 산모의 건강에도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속에 두 사람은 놓이게 된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자신의 강력한 주장으로 발생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진행했던 브로커 현숙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당장 인터뷰 문제만 잘 해결되면, 5개월이 조금 지나도 아이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만에 하나라도 두 사람이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지 못하고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에 흠집이 생길까 하는 것이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이 앞서는 부부에게 인터뷰에 앞서 딱히 시작하지도 않은 입덧을 하라고 가르치고, 나오지 않은 배도 나와 보이도록 옷만 껴입게 만든다.
03.
한 번 시작된 거짓말이 브레이크도 없이 조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동안 처음에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두 사람을 만나러 온 국토부 직원이 내년부터 기준이 더 까다로워져서 두 사람의 경우에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앞으로 집을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과 함께 아이가 태어나면 한 번 더 직접 만나러 오겠다고 선언하는 장면부터가 시작이다. 두 사람의 뜻이 어떤지 잘 알면서도 아이를 포기하는 일은 죄라며 옥죄어 오는 엄마의 잔소리와 산부인과에서 직접 듣고 보게 된 뱃속의 아이가 전해오는 심장 박동 소리도 부부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두 사람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상황이 아니다. 부부는 아이를 포기하든지 아파트를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심지어 처음의 선택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문제는 또 생긴다. 청약을 신청할 당시 브로커 현숙의 허위 서류를 제출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파트는 고사하고 감옥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아파트를 포기하는 경우에도 한 번 당첨된 이력으로 인해 후순위가 되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일은 평생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세 차익만 최소 3억, 지역 시세를 볼 때는 7~8억은 거뜬한 천금 같은 기회를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