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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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야마다는 분노에 휩싸이는 모습이지만 고조의 친구가 스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부터 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유골을 자신이 가져올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4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로 혼자 자랐기 때문에 생각도 나지 않고, 유골함이나 무덤이니 해서 돈도 많이 들 테니 인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아직 공장에서 첫 월급을 받기 전의 그는 몇 푼도 되지 않는 동전으로 마트에 들어갔다가 그냥 돌아 나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럴 의무도 없다면서 말이다.
실제로 사회복지과의 한 창고에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무연고자의 유골들이 가득 쌓여있다. 노숙자의 경우에는 이름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직원에 따르면 1년이 지나도록 찾는 사람이 없을 경우 그냥 공동묘지에 임의로 모시게 된다고 한다. 야마다의 아버지 역시 어쩌면 그런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홀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고독사에 이어, 그 후에도 아무도 찾지 않는 무연고자의 신세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 또 한 번 다시 외롭게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를 영영 잃어버리게 될 아들과 죽어서도 혼자일 뻔한 아버지 모두를 구하는 것이 바로 옆집 남자 고조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포기하겠다는 야마다에게 '없었던 사람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따끔한 충고를 한다.
그 이후의 일이야 어찌 되든 간에 일단 사회복지과를 찾아 담당자를 만나고 아버지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 모두가 삶에 갑작스럽게 뛰어들어온 이웃에 의해서라는 설정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큰 의미를 가진다. 만약 야마다가 이곳 무코리타 하이츠에 머물게 되지 않았다면, 이 공동주택의 공간이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넘나들 수 있는 형태의 구조가 아니었다면, 옆집에 살던 남자가 지금의 고조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 밖으로 결코 넘어오지 않는 쪽의 인물이었다면 높은 확률도 야마다 역시 자신의 아버지처럼 홀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지 않았을까.
04.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아버지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해야겠다. 영화는 야마다와 그의 아버지 사이에 복잡한 사연을 굳이 집어넣지 않는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야기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 최소한의 개연성을 드러내는 것은 필요하다. 그의 유골 인수를 꺼려하던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그의 화장에 유일하게 배석했던 사회복지과의 직원으로부터 처음 주어진다. 세상을 떠나기 전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묻는 야마다에게 그는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서 표정 같은 건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울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말을 건넨다. 사람의 울대가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남는 것은 드문 일인데 이는 그 사람의 평소 행실을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다면서 말이다. [이는 좌선하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뜻으로 울대뼈를 일본말로 '후불(喉仏)'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래한 의미로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직원의 기억은 그리 과학적이지 못하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겨진 삶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담담하면서도 정갈한 부분이 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는 고독사의 경우에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에 놀라 고인의 시신이 문쪽으로 향해있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반대로 집안을 향하게 되는 자살의 경우와도 달랐다. 어느 쪽으로도 향하고 있지 않은 아버지의 집 안에는 그가 마지막까지 돌보던 식물도 있었고, 이제 막 씻고 나와 마시는 듯했던 우유 절반이 담긴 컵도 식탁 위에 그대로인 상태였다.
야마다는 그제야 자신이 아버지와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지진으로 인해 아버지의 유골함은 이미 깨져버린 이후지만,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관계를 그는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 아버지조차 다가오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누를 수밖에 없었던 '생명의 전화'가 의미하는 바가 얼마나 무겁고 거대한 것인지를 말이다. 인간 본연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경험하며 수도 없이 눌렀을 그 번호만이 그의 핸드폰 발신 목록 속에 가득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