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SAVE THE CAT >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두 인물의 자리를 잠시 미뤄두고 두 사람의 품으로 뛰어 들어온 생명체를 먼저 들여다보자. 진희에 의해서 이름까지 바뀌며 두 사람의 공간에 머물게 된 메기는 다소 정체되어 있던 작업실의 공기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작업을 할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며 제 존재를 조금도 감추려 하지 않는 고양이로 인해 두 사람의 환경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두 사람의 곁을 파고들던 메기는 이윽고 영우와 진희가 오래 감추어두고 있던 과거의 일까지 파헤치게 된다.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을 이제 열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진희의 제안에 영우는 끝내 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과 이후의 침울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방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방을 열고 들어가 뭔가를 깨뜨리고 도망쳐 나오는 고양이의 허리에는 막중한 책임이 걸려있다.
다시 말하면, 외부인 격에 속하는 그의 행동이 아니고서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방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었을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당장에야 그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외면하기에 바쁘던 마음을 직시하는 쪽으로 조금 돌려놓게 된다.
다시 말해 이 영화 속에서 고양이의 존재란, 누군가의 품에 안겨 돌봄을 받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아직 어떤 시간으로부터 빠져나올 준비가 되지 않은 인물의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기도 하다. 품 속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로 오래 방치되어 있던 누군가의 자리를 스스로의 존재로 하여금 다시 비워내고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손님과도 같은 역할로 말이다. 영화는 이 작은 생명체가 가진 그런 역할을 빌미 삼아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사이를 연결시키고, 그 통로를 통해 관객들이 영우와 진희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유도한다.
04.
"자기가 다치지 않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영우는 진희가 데려온 고양이를 함께 머물게 하는 조건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무 힘들어 보이면 반드시 그런 사람을 찾아 내보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룸메이트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인해 함께 생활하게 된 영우와 자신이 직접 데리고 왔기 때문에 직접적인 보호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진희의 사이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광고 연출부 일을 나가면서까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자 하는 진희의 모습에서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메기와 함께 시간을 더 보내게 되는 것은 영우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가 영우의 모습을 더 바라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쌓이는 시간에 의해 서서히 품을 내어주는 쪽의 역할을 영우가 하게 되는 것이다. 작업을 성가시게 하는 메기와 조금씩 교감하기 시작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 이어 갑자기 사라져 버린 메기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찾아다니며 걱정을 하고 진희를 만나 눈물부터 터뜨리는 장면에 이르는 모든 장면에는 그녀가 자신의 품을 내어주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새로운 존재의 성공적인 안착, 이제 남은 것은 'M의 방'이라고 쓰인 저 방문 너머의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