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사빈 바이스, 한 세기의 기록>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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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사빈 바이스는 다방면으로 이름을 알리며 상업적인 작업까지 가리지 않고 여러 작업을 하게 되지만, 1930년대 전후 시대를 지나며 처음 시작했던 작업은 사회 각 계층의 사람들이 가진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이었다. 북부의 광부들부터, 어린아이를 돌보는 주부들, 파리 거리의 노숙자와 타라스콩의 집시까지. 그녀의 셔터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 담아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촬영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불쾌한 뜻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대상이 되는 이들도 불편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걸 포착하면 빨리 사진을 찍어야 하죠."
여기에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서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유대감을 형성하곤 했던 사빈 바이스의 성품이 큰 역할을 했다. 그녀가 웃으면서 한 두마디만 건네도 다들 친해지곤 했는데, 위선적이지 않고 스스로가 먼저 자연스러울 줄 알았던 그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사빈의 작품 속에 어른의 모습보다 아이들이 더 많이 담겼던 이유와도 연결이 된다. 본인 스스로는 특별히 아이들의 사진을 찍은 기억도 그런 의도도 없었다고 말하는데, 그녀의 그런 마음과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런 경향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다만 사빈 바이스는 시대적으로 볼 때, 당시 아이들이 거리에 많았기 때문에 그런 사진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는 말한다. 어디에서든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촬영이 쉽지는 않았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아이들을 통해 재구성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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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본격적인 활동은 1952년 보그 잡지 사무실에서 로베로 드아노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사진에 대한 관심사가 비슷했던 두 사람은 이때를 시작으로 평생의 긴 우정을 이어가게 된다. 사진 대행사인 '라포'의 일원이 된 것도 이때다. 휴머니스트 사진 대행사로 불렸던 이 회사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 만든 공동 작업체였다. 레이몽 그로세, 로베르 드아노, 윌리 로니스, 자닌 니에프스까지 당대 최고의 인물들 사이에서도 사빈 바이스는 훌륭한 사진작가였고, 주제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방면의 촬영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사빈은 자신의 사진에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사진으로부터 시대의 달콤함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아이러니를 느끼고, 때로는 힘든 일상의 단상을 마주하게 되기도 했다. 그녀가 작업을 시작하던 때는 전쟁이 시작되고 끝나고, 다시 또 전쟁이 놓인 시대였으니 그리울 것이 없었던 탓에 과거에 대한 향수가 존재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사진 속에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놓여 있으니 사람들이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당시의 명망 높은 사진작가인 로베로 드아노 역시 사빈 바이스의 작품을 두고 사회적 통념에 도전한 작품들로 간단해 보이지만 '자세히 봐야 한다'는 평가를 남겼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장면도 실제로는 자신만의 의도를 담아 찍은 것으로 긴장감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노인이 늘 덕망 있는 이들로만 표현되지 않고, 젊은 여성은 반드시 웃어야 한다는 당시의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되어 있는 것 역시 큰 의미를 가진다고 그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