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마인드 게임> 스틸컷
EBS국제다큐영화제
03.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국가에 도착하고 난 뒤에도 난민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는 분명히 전작인 <그림자 놀이>와 다른 지점을 포착하고자 하는 두 감독의 의도에 해당하지만, 나시리 역시 겪게 되는 고행의 과정이 생략되지는 않는다. 이는 전작에서 그려졌던 난민 아이들의 힘겨운 시간에서 그 누구도 예외적으로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모든 고난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찾아오게 될 '마인드 게임'의 근원이 바로 이 지점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런 고난이 아니라면 사실, 입국과 난민 신청 심사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고 해도 실망은 할지언정 절망까지 할 일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석탄 화물 기차에 맨몸으로 오르기도 하고, 이름 모를 컨테이너 박스에 갇히기도 하고, 특정 국가에서는 난민 캠프를 향한 지역민들의 폭력적인 공격도 받게 되는 장면들이 작품의 전반부에서 계속해서 등장한다. 청결이나 안전과 같은 인도주의적인 문제는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길 위에서 목숨을 잃는 난민의 수가 점점 늘어나다 보니, 나시르와 연락이 끊기게 되는 때에는 두 감독의 마음도 애가 탄다. 심지어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창궐하면서 말 그대로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숱한 어려움 끝에 결과적으로 벨기에에 도착하게 되지만, 그와 같은 케이스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이 작품은 말한다.
04.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언제 죽을지 몰랐지만 유럽에 오고 나서부터는 매일 죽을 것 같다."
도착만 하고 나면 모든 게 편해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주어진 현실 속에서는 새로운 고난의 연속이다. 가장 처음의 문제는 망명 허가를 받는 일이다. 그와 같은 어려움을 뚫고 유럽 국가에 도착한 이들의 정식 신분은 '망명 신청자'다. 아직 해당 국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뜻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추방까지 당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상태다. 특히 나시리와 같은 미성년자 난민의 경우에는 성인이 되기 전에 하루빨리 망명 허가를 받는 것이 중요한데, 미성년자에게는 후견인을 붙여주고 학교에도 보내주는 등 정착을 위한 여러 가지 권리와 혜택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어린아이들이 험난한 길 위에서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빠르게 조숙해지고 실제 제 나이보다 훨씬 더 성장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작품 속 나시리 역시 망명 센터로부터 '의심' 판정을 받는다. 여권과 아프가니스탄 신분증을 제시해도 사본은 믿을 수 없으며, 현재의 모습이 절대 17세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다. 벨기에 정부는 그에게 서류 원본을 제출하고 의료 기관을 찾아 생물학적 나이를 판별하는 검사를 받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8개월만 지나면 성인이 되는 그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서류 원본을 받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는 자살 행위에 가깝다. 의료 기관에서 받는 검사 역시, 대략적인 나이를 판별할 뿐, 정확한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불법 브로커와 같은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원본 서류를 제출한다고 해도 이 절차가 정확히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나이를 인정받는다는 것이 망명 허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 속에서 어떤 난민 아이들은 정신적인 압박과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웠을 길 위의 시간들조차 모두 이겨내 놓고 마지막 관문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지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불안. 결코 쉬운 마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