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DF 2023 상영작 <게임에 진심인 편 -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 스틸컷
EIDF 2023 상영작 <게임에 진심인 편 -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 스틸컷EBS국제다큐영화제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게임을 둘러싼 화두는 생각보다 많다. 청소년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사회적 문제나 셧다운제와 관련한 법률적 제한에 관한 것들. 하나의 산업과 관련이 되어 있는 매체인만큼 각자의 상황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다양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에 긍정적인 쪽보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특히 학구열이 높고 자녀의 학업 성취도에 관심이 높은 국내에서는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훨씬 더 부정적이다. 한때 골목마다 PC방이 성행하고, 국내 프로게이머들이 전 세계 상위권을 석권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지난 2022년 EBS 다큐프라임 프로그램의 3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게임에 진심인 편>의 마지막 편인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은 이런 게임 문화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중심에 두고 있는 문제는 '과연 게임이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다. 현행법상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 1항에 따라 아직 문화예술에 속하지 못하는 매체인 게임을 놓고 게임계와 문화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따르며 이 화두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나간다.

이 작품의 특징은 실제 유명 스트리머인 '침착맨'이 실시간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의 콘셉트를 따라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과거 유명 웹툰 작가로 예술의 영역에도 머물러 봤고, 게임 방송을 통해 이 문제의 중심에도 서 봤다는 그의 진행은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무거운 내용을 다소 완화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다양한 스트리밍 방송과 유튜브 채널의 형식에 익숙한 어린 세대들까지 해당 주제를 받아들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기대되는 형식이다.

02.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독서와 게임의 위치를 바꾸어 놓은 페이크 다큐 형식의 짧은 영상 하나다. 이미 오랜 역사를 통해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은 디지털 게임과 달리 이제 막 시작된 책 문화가 아이들에게 위험한 영향을 초래한다는 상황을 가정하여 만들어진 영상이다. 복잡한 두뇌 활동을 촉진하는 게임은 하지 않고 독서에만 빠져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는 이 영상은 두 매체의 자리를 바꾸어 놓는 것으로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역할을 해낸다. 이를 위해 과거 게임이 가진 폭력성을 실험한다는 목적으로 PC방의 전원차단기를 내리던 뉴스 영상을 패러디해 똑같이 독서실의 차단기를 내리는 장면까지 활용된다.

사실 작품의 서두에서 활용되는 이 짧은 영상 하나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그것이 단지 게임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왔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확한 기준과 근거를 놓고 사회 각계의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다큐멘터리가 게임을 놓고 예술성이라는 측면을 진지하게 이야기하기 전에 필요한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름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다음과 같다. 게임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찬반 양쪽의 전문가 의견을 듣고, 왜 지금까지 게임이 예술로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는지를 들여다보고, 마지막으로는 어떤 방식을 통해 게임의 예술성이 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로운 예술 분야의 한 측면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
 
 EIDF 2023 상영작 <게임에 진심인 편 -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 스틸컷
EIDF 2023 상영작 <게임에 진심인 편 -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 스틸컷EBS국제다큐영화제

03.
게임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찬성하는 쪽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먼저, 예술이라는 것은 도구를 통한 창작 활동인데 게임에도 시스템, 그래픽, 사운드와 스토리처럼 그런 도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거나 감동을 전달하는 측면, 인생을 반추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게임을 즐기며 한 번이라도 감동을 느끼고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 있다면 이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도 믿는다. 심지어 아주대학교의 김경일 교수는 심리학에서 보는 예술의 정의 중 하나는 은유라면서, 아주 간단한 어드벤처 게임에서부터 심오한 RPG 게임에 이르기까지 게임 속에 많은 메타포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를 예술로 보는 일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한편, 게임을 예술이라고까지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쪽은 애초부터 상품으로써의 속성이 너무 강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에 대해 카이스트 도영임 교수는 게임이 예술이냐 아니냐라는 전문 인터뷰에서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창작자들조차 상업적 제작이 시초가 되는 게임이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고 말한다. 이를 보면 게임이라는 매체가 예술인지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명 게임 캐릭터인 슈퍼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조차 자신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게임이 진짜 예술에 속하는 매체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졌다면 지금과 같은 갑론을박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에 대한 반론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나리자>가 그렇듯이 말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현재의 상황 자체가 게임이 아직 정확히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지 못하고 속해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상품으로써의 속성에 집중할 것인가, 혹은 이것을 가지고 어떤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에 집중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다. 다만 현실적으로 상업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한 예술성만 쫓으며 게임을 만들기는 어렵다. 게임 제작에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04.
현대 사회에서 상품은 많은 것들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술 작품이라고 부르는 대상에도 가격이 붙는다고 이해완 서울대학교 교수는 말한다. 지금 순수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에도 모두 가격이 붙어 있으니 이들 또한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라면 상품성과 상업성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적인 대상에 달려 있는데,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최우선의 목표가 가격이 붙어 사람들에게 팔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유원준 영남대학교 교수는 이렇게도 이야기한다. 예술 작품의 경우에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최종 목적이라기보다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서 느끼는 경험이 목적이라고 말이다. 게임과 예술의 영역이 유사해 보일 수는 있어도 최종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백남준 선생님의 비디오 아트 같은 경우에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예술계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이들이 존재했다. 지금 디지털 매체를 통해 나와있는 사진이나 영화도 어느 시점까지는 이것이 대중문화냐 대중예술이냐 하는 문제로 많은 논란을 거쳐왔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시각과 그것이 예술이라고 모두가 말하는 현실 사이에는 역사나 제도, 이론 등의 많은 기준이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는 현재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주도로 게임도 새로운 예술분야 중 하나로 포함시키려는 일부개정법률안 입법 시도가 지속되는 이유가 된다.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학문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이 아닌, 현장의 모습만 보더라도 게임은 예술인 쪽과 예술이 아닌 쪽의 경계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현장에 놓여 있는 전문가들의 경우, 그 태도나 방식에 있어 다른 예술 문화를 창작하는 이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순수 예술이나 대중 예술의 영역에서 넘어오기도 하고, 또 반대로 다시 넘어가기도 한다. 게임이 필요로 하는 사운드나 이미지, 렌더링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개인 혹은 집단이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해 예술적인 가치를 끌어올리려 노력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EIDF 2023 상영작 <게임에 진심인 편 -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 스틸컷
EIDF 2023 상영작 <게임에 진심인 편 -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 스틸컷EBS국제다큐영화제

05.
이 작품이 게임 매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새로운 매체가 예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과도기의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게임 역시 예술적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더 나아가 다른 매체는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만의 특수성 또한 내포하고 있기에 언젠가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게임만이 가진 특징으로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상호작용'의 측면이다. 유저가 스토리나 예술의 한 부분이 되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 지금까지의 순수예술이나 대중예술이 쉽게 할 수 없었던 부분의 일이다. (참여형 예술이나 선택적 알고리즘에 의한 결말을 볼 수 있는 매체들이 있었으나 그 자유도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과거 오랜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이뤄진 부분이다. 하나의 매체가 가진 고유의 특성이 다양한 예술적 실험이 시도되는 과정에서 그동안 밟아보지 못했던 새로운 미적 영역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새로운 예술 매체로 말해 왔으니까.

이 작품 <게임에 진심인 편 :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은 분명 게임이라는 매체가 예술에 속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문제의 답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도 분명히 흥미롭다. 단순히 게임만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막연한 기준으로 예술이라고 이야기해 왔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부분은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해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다는 부분이다. 단순히 게임이 부정적이다, 해롭다의 측면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게임 매체가 어떤 역할을 앞으로 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시선을 맞추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떤 대상을 좋다 나쁘다의 흑백 논리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상상할 때 더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큐멘터리 EBS국제다큐영화제 게임에진심인편 게임 EIDF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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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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