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그 해 우리는> <사내맞선> <이태원 클라쓰> <경이로운 소문> <술꾼 도시 여자들> <스위트홈> < D.P. > <지금 우리 학교는> <사냥개들> <방과후 전쟁활동>. 최근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 채널, OTT 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이자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들이다. 이 밖에도 <무빙>과 <이두나!> <살인자 o난감> <이재, 곧 죽습니다> 등 많은 웹툰 원작 드라마들이 촬영 중이거나 공개를 앞두고 있다.

웹툰 원작 드라마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과 달리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의 기세는 다소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쌍천만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와 695만 관객을 모았던 <은밀하게 위대하게>처럼 웹툰 원작영화 중에도 흥행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패션왕>(59만)과 <치즈인더트랩> 극장판(22만)처럼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던 작품도 적지 않았다.

'웹툰 원작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징크스를 만든 감독은 장편웹툰 1세대 강풀 작가였다.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2006년 <아파트>를 시작으로 <바보> <순정만화>등이 차례로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가 등장했다. 바로 윤태호 작가의 동명웹툰을 원작으로 강우석 감독이 연출했던 정재영과 박해일, 유준상 주연의 스릴러 영화 <이끼>였다.
 
 전국 340만 관객을 동원한 <이끼>는 웹툰 원작영화 중에서 처음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전국 340만 관객을 동원한 <이끼>는 웹툰 원작영화 중에서 처음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CJ ENM
 
영화-드라마로 각색된 윤태호 작가의 작품들

윤태호 작가는 허영만 화백의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해 조운학 화백의 문하생을 거쳐 출판만화로 데뷔했고 웹툰으로 넘어와 웹툰계에서도 한 획을 그은 대한민국 만화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실제 출판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많은 작가들이 웹툰 쪽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했던 2000년대, 윤태호 작가는 꾸준히 히트작을 남기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중 많은 작품들이 영화 또는 드라마로 제작됐다.

윤태호 작가의 이름을 젊은 독자들에게 널리 알렸던 작품은 역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D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됐던 <이끼>였다. <이끼>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실사체, 만화체를 넘나드는 작화, 그리고 치밀한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독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2012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선정한 '한국만화 명작 100선'에 포함된 <이끼>는 윤태호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영화화됐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이병헌의 명대사로 대표되는 영화 <내부자들> 역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연재됐던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내부자들>은 포털사이트가 아닌 H신문 홈페이지에서 연재됐던 웹툰으로 2012년 73회를 끝으로 연재가 중단됐다. 비록 웹툰은 완결되지 못했지만 2015년 우민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돼 감독판을 포함해 9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사랑 받았다.

지난 2012년 D포털사이트에서 연재를 시작해 현재까지도 K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에서 2-2부가 연재되고 있는 <미생>은 많은 독자들이 윤태호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바둑에 비유해 흥미롭게 표현한 <미생>은 지난 2014년 드라마로 제작돼 임시완을 비롯해 강하늘, 변요한, 김대명 등 많은 스타배우들을 배출했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2013년에는 프리퀄에 해당하는 영화버전이 제작돼 모바일 앱을 통해 공개됐다.

윤태호 작가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인천상륙작전>을 연재하기도 했다. 동명의 제목 때문에 많은 대중들이 웹툰 <인천상륙작전>이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원작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웹툰과 영화는 제목과 시대적 배경만 같을 뿐 전혀 관련이 없는 별개의 작품이다. 실제로 웹툰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 그 자체를 조명하기 보다는 전쟁 전후 한국 전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만 39세 정재영의 눈부신 70대 노인 연기
 
 정재영은 <이끼>에서 마흔이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70대 노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정재영은 <이끼>에서 마흔이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70대 노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CJ ENM
 
<이끼>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이끼>를 좋아했던 독자들은 쾌재를 불렀다. 무엇보다 어설픈 신예감독이 아닌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 감독이자 상업영화 연출에 있어서 만큼은 확실한 노하우와 경험을 가진 강우석 감독이 <이끼>를 연출한다는 사실에 관객들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 그리고 강우석 감독은 웹툰 기준 79부작이었던 방대한 분량의 <이끼>를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긴 2시간 42분짜리 작품으로 완성했다.

물론 아무리 긴 런닝타임을 잡았다 해도 1년 가까이 연재됐던 장편 웹툰을 영화 속에 다 포함시키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이끼> 역시 각색과 편집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때문에 원작을 'N차 정독'한 독자들은 영화 <이끼>의 완성도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끼>는 <인셉션> <아저씨> 같은 쟁쟁한 경쟁작들 사이에서 전국 34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끼>의 촬영이 시작된 2009년 여름 천용덕 역을 맡은 정재영의 나이는 만 39세에 불과했다. 실제로 정재영이 천용덕을 연기한다고 알려졌을 때는 너무 어린(?)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재영은 젊은 형사시절부터 마을의 절대자가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뛰어넘는 폭 넓은 연기를 선보이며 자신의 연기내공을 마음껏 뽐냈다. 정재영은 <이끼>를 통해 2010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정재영의 70대 노인 연기가 우려와 달리 기대 이상이라는 호평을 받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박해일과 유준상의 연기는 영화 속에서 너무 튀고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는 이질적인 대사톤을 통해 마을 바깥에 사는 외지사람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한 강우석 감독의 의도가 담긴 연출이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동안 연기 잘하는 배우로 알려졌던 박해일과 유준상은 애먼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끼>에 등장하는 고립된 마을은 제작진이 무주군청의 도움을 받아 약 2만 평 부지에 4개월 여의 시간을 들여 직접 세트장을 제작했다. 특히 일반 건축물과 달리 모든 집의 창이 이장 집을 향하게 설계돼 있어 이장이 마을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영화 중·후반부엔 하성규(김준배 분)의 집과 증거물이 있는 슈퍼가 불타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을 건축에 참여했던 미술팀은 이 장면 촬영 당시 상당히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수상한 유해진의 열연
 
 유해진은 <이끼>에서 음침한 분위기의 김덕천 역을 통해 청룡영화상과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유해진은 <이끼>에서 음침한 분위기의 김덕천 역을 통해 청룡영화상과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CJ ENM
 
유선은 기도원이 불에 타고 마을로 거처를 옮길 때 류목형(허준호 분)이 마을로 데려 온 소녀 이영지를 연기했다. 이영지는 대외적으로는 마을의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마을 남자들의 밥을 차려주는 일을 하지만 밤에는 천용덕 이장을 비롯한 마을남자들의 성욕을 채우는 역할도 한다. 류목형조차 영지를 돕지 못하고 방관했는데 그의 아들 류해국(박해일 분)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마을남자들의 악행을 목격하고도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직업 없이 천용덕 이장과 함께 다니며 수족 역할을 하는 김덕천은 어린 시절부터 천용덕에게 이용을 당했다는 점에서 웹툰 독자들과 영화 관객들에게 가장 큰 동정을 받은 캐릭터다. 하지만 이장의 수족으로 나쁜 일들을 일 삼았고 이영지를 성노리개로 이용했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다. 김덕천은 유해진이라는 좋은 배우를 만나 캐릭터가 더욱 빛났고 유해진은 <이끼>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킹덤>과 <스위트홈> <마이네임> <너와 나의 경찰수업>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등 최근 OTT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김상호는 <이끼>에서 친구를 총으로 쏴 죽인 진석만 역을 맡았다. 영화에서는 한 명만 살해한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할머니와 애인, 그리고 애인 뱃속에 있는 자신의 아이까지 4명을 살해한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나온다. 진석만은 산에서 류해국을 죽이려다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최근 디즈니플러스드라마 <카지노>에서 차무식(최민식 분)이 모시는 민회장(김홍파 분)을 괴롭히는 우사장 역으로 출연했던 김준배는 <이끼>에서 과거를 지우고 마을에서 하우스농사를 짓는 하성규를 연기했다. 과거 외딴 시골 섬에서 사창가 포주 노릇을 하며 매춘부들을 심하게 괴롭혔던 하성규는 불에 타 죽은 매춘부들처럼 똑 같이 집에 옮겨 붙은 불길에 휩싸여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이끼 강우석 감독 정재영 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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