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포스터.

<수라> 포스터. ⓒ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난 보수주의자다. 경제학을 했고 개발 쪽에서 일했다. 새만금도 잘 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많이 반성하고 성찰했다. 앞으로 이런 영화 계속, 계속 만들어 달라."
 
다큐멘터리 <수라> 황윤 감독이 "너무 감동적"이라며 소개한 어느 6070 통영 관객의 당부다. 새만금 간척과 전북 군산의 수라 갯벌을 소재로 한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수라>가 6주차를 맞았다. 누적 관객은 3만6천 명이다(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7월 26일 집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얼어붙은 극장가 상황을 감안하고 독립예술영화들의 상영 조건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수치다.
 
26일 <수라>는 8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개봉 6주차 상영관은 독립예술전영관을 중심으로 22개를 유지 중이다. 돌풍을 이어가는 진원은 공동체 상영이다. 개봉 엿새 만에 2만 명을 동원한 <수라>는 개봉 전후 전국을 돌며 공동체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영화의 위기 속다. 더 큰 타격을 받는 쪽은 독립예술영화일 수밖에 없다. <수라>의 더디지만 은근하고 묵직한 장기 상영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원동력은 100개 극장을 필두로 한 자발적인 관객들의 응원이라 할 수 있다. <수라>는 개봉 당일 전국 70개 극장에서 동시 상영했다. 100개 극장 추진단의 사전 후원 덕택이다. <수라> 황윤 감독은 <작별>(2001)을 시작으로 <어느 날 그 길에서>(2006)와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를 통해 생태와 동물 이슈에 천착해 왔다. 독립 다큐계에서도 흔치 않은 행보다.
 
그런 감독의 작품 세계를 응원하고 공감하는 관객들이 '100개 극장 추진단'으로 모였다. 강릉, 광주, 울산, 제주, 수원, 부산, 인천,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인 시사회를 수십 차례 열었다. 요즘 말로 '내 돈 내 산' 관객 배급 켐페인이다. 이렇게 모인 자발적인 관객만 4천 명이 넘었다. 생태와 환경, 교육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단체들이 동참했다. 그런 관객들의 힘으로 인해 전국 각지의 스크린이 열렸다. 전국 갯벌의 3%를 차지한다는 통영 역시 그런 지역의 하나였다.
 
"'100개의 극장' 통영 추진단이 6/21 <수라>를 통영에서 개봉시켰을 뿐 아니라 다시 뭉쳐 이번 상영회를 열었다. 생태문화시민학교 최광수 이사장님을 필두로 많은 분들이 애써주셨고, 지속가능발전 교육재단 청년 활동가들의 푸릇푸릇한 열정 너무 좋았다. 귀한 어린이 관객들이 대화 끝까지 경청해 주어 고마웠다."
- 지난 23일 황윤 감독 페이스북 글 중에서

 
<수라>의 놀라운 행보
 
 27일 열린 <수라> 공동체 상영 현장.

27일 열린 <수라> 공동체 상영 현장. ⓒ 하성태

 
"도요새가 알래스카에서 호주까지 어떻게 가는지 그런 끈기가 굉장히 궁금해요. 마법인 것 같아요."
 
그 귀한 어린이 관객이 물었다. 28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열린 서울학부모지원센터 공동체 관람에서였다. 황윤 감독은 "그 끈기가 정말 대단한 것 같다"며 "학자들이 아직도 연구를 하고 있는데 (철새들이) 어떻게 찾아가는지, 별자리를 보고 가는지, 자기장의 어떤 그런 뭔가의 힘에 이끌려 가는지 아무도 그거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친절히 답했다.
 
이날 상영은 그 귀한 어린이 관객이 학부모들과 함께 다수 관람했다. <수라>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동물 다큐에서나 볼 법한 희귀 철새들이 다수 출연한다. 엔딩 크레딧 속 출연자 목록에도 새들의 이름이 빼곡이 들어찬 영화는 흔치 않을 것이다.
 
맞다. <수라>는 어린이 관객들이 반길만한 동물 다큐이기도 하다. 황윤 감독이 <명탐정 코난>을 경쟁작으로 여길 법 하다. 이날 학부모와 어린이 관객들을 마주한 황윤 감독은 수라 갯벌을 지켜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만히 있으면 (환경과 기후를 지키려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겠죠. 그러면 희망은 없는 거겠죠. 이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 우리가 지금 기후이기 때문에 엄청난 재난을 계속해서 맞이하고 있잖아요. 산불이 일어나고 지금은 또 폭우 때문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난민이 되고, 앞으로 내년에는 극심한 가뭄이 올지도 몰라요. 어떻게 기후가 흉포해질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지금 접어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여야 되는데, 그래야 우리 어린이들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 막대한 온실가스를 내뿜는 공항을 또 짓겠다니 이것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생존을 위해서 생존권을 위해서 (수라 갯벌이 위치한 군산에) 공항은 더 이상 지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 이미 15개 공항이 있고, 그중에 5개 빼고 이미 10개는 만성 적자예요. 엄청난 혈세 낭비이자 어린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수라 갯벌은 영화에서 보셨다시피 법으로 보호해야한다고 지정해 놓은 40종이 넘는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어요. 그중에 여러분이 보신 흰발농게도 있고 검은머리 갈매기도 살고요. 이런 수많은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고, 그것이 다 증거로 제출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왜 하필이면 거기다가 공항을 지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라>의 관객 참여 캠페인은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작인 <수라>는 이번 주만 해도 전주와 서울, 대구에서 공동체 상영을 진행했거나 진행한다. 올해로 결성 20년을 맞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과 함께 '수라갯벌의 친구들'(텔레그램)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어린이 관객들의 정확한 눈
 
 <수라>의 한 장면.

<수라>의 한 장면. ⓒ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갯벌은 여기저기 많고, 정부가 잘 관리하는 줄 알았는데 <수라> 영화를 보고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갯벌은 잘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생명들이 죽어나가고 많은 분들이 노력하시고 있었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원래 갯벌은 다 살아있고 매립 같은 건 생각도 못해봤는데 매립을 진행했다니 너무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해수 유통이 하루에 2번씩이라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윤 감독이 본인 페이스북에 공개한 지난 아이들의 관람평이다. 노원구 소재 상천초등학교 5학년 관객들은 지난 13일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수라>를 관람했다. 때때로, 아니 종종 아이들의 시각이 정확할 때가 있다. 새만금과 수라 갯벌을, 희귀 철새들을 죽이는 국가 단위 개발을 확인한 아이들의 평이 딱 그랬다.
 
잔잔한 돌풍의 진원이야말로 <수라>의 완성도와 작품성일 테다. 서울에서 군산으로 이주했다는 황윤 감독이 7년 간 작업한 <수라>는 지난 2020년 작고한 고 이강길 감독의 <살기 위하여>(2006)를 잇는 새만큼 관련 다큐요, 동물 다큐에 천착해온 황 감독이 희귀 철새들과 이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수라>는 그야말로 새만금을 둘러싼 토픽과 사람들을 '종횡'한다. 20년 넘게 새만금 지키기 활동에 전념하고 대를 이어 희귀종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 단장 부자의 시간들이 종이라면,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횡단을 이어가는 철새들의 마법 같은 날개 짓은 횡이라 할 수 있다.
 
황윤 감독의 카메라는 새만금과 수라 갯벌에 천착한 7년의 시간을 되짚으며, 아니 20년 간의 새만금 지키기 운동을 아우른다. 말 그대로 종횡무진이다. 희귀 철새를, 동물들을, 잊고 살았던 자연과 생태를 스크린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귀하고 소소중하다. 묘한 감동이 인다.
 
그래서 <수라>를 보는 일은 지구와 세계와 우주 속 하나의 미물일 수밖에 없는 나를 돌아보는 일이며, 그 개인들이 흰발 농게를 위해, 검은머리 갈매기를 위해, 도요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이기도 하다. 황홀하기 그지없는 도요새의 군무를 스크린으로 확인하는 일은 덤이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자녀들과 예술영화전용관을 찾아 관람하기 안성맞춤인 다큐멘터리가 맞다.
수라 새만금 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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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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