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의 카스미> 스틸컷
영화 <보통의 카스미> 스틸컷(주)비싸이드픽쳐스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보통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어떤 뜻인지는 알 것 같지만 바라보고 있으니 어쩐지 아득해지는 기분이 든다. 뛰어나지도 않고 열등하지도 않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이 단어를 삶이나 인생의 앞에 가져다 놓으면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삶의 기준은 남들처럼 뛰어나지 않은 생활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남들보다 열등하지 않는 삶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방향을 알 수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보통은 쉬우면서도 참 어렵다.

그런 보통의 인생에 대한 고민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삶도 때론 존재한다. 자신은 벌써 어떤 방식의 삶을 살아가야 할지 선택을 끝내고 확고한 걸음을 걷고 있는데도 제 삶의 바깥에서부터 개입해 오는 타인의 말과 시선이 끊이지 않는 이들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카스미의 인생이 그렇다. 이제 서른이 되는 딸의 결혼을 어떻게든 성사시키기 위해 말도 없이 맞선을 잡아오는 엄마와 언니의 성적 정체성을 의심하며 상처가 되는 말을 서슴지 않는 동생, 그리고 자신의 솔직한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그녀가 자신이 선택한 모양대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돌멩이가 되어 파문을 일으킨다.

영화 <보통의 카스미>는 연애 경험은 커녕 성적 끌림조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카스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감정이 일어나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우정을 제외한 타인과의 관계를 맺어볼 기회도 의지도 없었던 한 여성. 영화는 그런 인물을 통해 그동안 소재로 쓰인 적이 드물었던 무성애(Asexual)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02.
대부분의 이성애자가 갖고 있는 성적 특징과 다른 종류의 에이섹슈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영화가 주목하고자 하는 지점은 지연된 시점에 있다. 보통의 작품이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들이 성정체성을 처음 경험하거나 아직 인정하지 못한 상태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루고자 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 극 중 카스미는 자신의 상태를 명확히 인지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다. 남들과 다른 성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해서 혼란스러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인물을 심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개인의 내적인 부분과 외적인 부분 두 가지라면, 영화는 처음부터 캐릭터의 내적인 혼란이나 갈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그런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 그를 대하는 외부 환경과 어떻게 서로 상응하며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 자신이 에이섹슈얼이기에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아가겠다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이해시키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까지 나아가는 과정은 완전히 다른 작업에 속한다. 그러니까 영화는, 이제 스스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의 성향을 어떤 방식으로 외부에 전달하고 사회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를 지켜보고자 한다.

"연애나 결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영화가 카스미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이 시선은 당연하게도 사회와 구성원 모두가 갖고 있는 보편성 때문에 당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애초에 그녀가 가진 에이섹슈얼이라는 성향이 사회의 보편적인 성정체성 중 하나라거나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는 분위기라면 이 작품의 의미는 퇴색되고 만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향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오는 사회의 관념 덕분에 지금의 시선으로 카스미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극의 타이틀인 '보통의 카스미'라는 표현 속에도 카스미가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의미가 일차적으로 깔려있는 셈이다.
 
 영화 <보통의 카스미> 스틸컷
영화 <보통의 카스미> 스틸컷(주)비싸이드픽쳐스

03.
타인과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는 것은 사실 아니다. 실제로 카스미의 경우에는 누군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해 오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콜센터에 이어 유치원에 다니며 생활비를 벌고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며,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족과 안부를 나누는 그런 삶이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쳐왔던 첼로 연주를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조차도 세상이 말하는 보통의 삶과 닮아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꿈 대신 현실을 살아가는 경험 한번 정도는 하지 않나.

그녀의 삶이 타인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아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다. 무조건적으로 결혼만을 밀어붙이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다그쳐 오는 동생도. 연애나 성적인 흥미가 전혀 없어서 고백을 받아줄 수 없다는 진심을 꺼내보여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고 떠나가는 가까운 친구도 모두. 카스미가 가진 성정체성을 밝히지 않는 이상 이 거리가 저절로 줄어들 리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반복해서 바다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슬프게도 자신이 있는 그대로 놓일 수 있는 곳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뿐이니까.

본인이 동성애자라는 고백을 해오는 중학교 동창의 모습을 카메라가 담아내고, 영화의 중후반부를 지나며 가장 의지하게 되는 친구 마호(마에다 아츠코 분)가 AV 배우 출신이라는 설정을 갖게 되는 것 모두는 역시 카스미와 더불어 한 사회에서 소수자로 놓인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도 존재할 수 없고, 꼭 성정체성이 아니더라도 외부의 시선과 말들로 인해 스스로의 삶을 제대로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금씩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 이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 외부에 놓인 이들의 편협한 생각과 보편성에만 기댄 강요와 억압이라고 말이다.

04.
무엇도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카스미가 '자신만의 보통의 삶'으로 더 자신 있게 나아가게 되는 것은 두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다.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 만들게 되는 동화 신데렐라 영상의 재해석 작업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데이트하게 되는 남자 동료 교사와의 대화. 두 과정 사이에 다소 차이는 있다. 동화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장에 맞춰 바꾸고자 하는 행위는 적극적 개입에 해당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 또한 세상의 관습적인 시선에 맞서 행동하는 일이다. 카스미가 만든 동화 속 신데렐라가 왕자와의 결혼에 의문을 갖고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유치원 아이들이 배제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동화로 인해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잘못이 아닌 잘못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남자 동료 교사와의 대화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카스미가 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과 같은 행동뿐이다.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혹시나 모를 고백에 대비해 미리 경고하는 것. 앞서 동화를 재해석했던 모습에 비하면 소극적인 태도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카스미가 마음의 평안을 얻고 다음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게 되는 것은 오히려 이 쪽의 경험이다.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는 남자 동료 교사의 태도 앞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 사회에도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그래서 처음 자신이 설정했던 걸음의 모습 그대로 나아갈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친구 마호도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인물이지만, 완전한 타인으로부터의 '바다', 이해의 공간을 만났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처음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 <보통의 카스미> 스틸컷
영화 <보통의 카스미> 스틸컷(주)비싸이드픽쳐스

05.
"다른 영화의 톰 크루즈는 무엇을 향해 달리는데, <우주전쟁> 속 톰 크루즈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요."

이제 달리기 시작하는 카스미를 바라보며 카메라가 힘차기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마치 톰 크루즈를 닮았다. 과거의 그녀 자신은 어쩌면 스스로가 계속해서 도망쳐 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동화의 재해석과 같은 행위나 그만둔 첼로에 대한 미련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달리고 있는 카스미의 표정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준다. 어딘지 모르게 상기되어 있고 기대에 차 있는 모습. 아직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걸음은 이제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향하는 쪽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뀌리라는 믿음은 희망보다 거짓에 가깝다. 아마도 카스미의 삶은 당분간, 아니 그보다 더 오랫동안 현재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 줄어들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여전히 딸의 결혼을 가슴 깊이 바랄 것이고, 잘 모르는 남자들은 그녀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드러내고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그래도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보통'의 카스미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카스미 본인에게는 이제 이 '보통의 카스미'가 조금도 어렵거나 힘들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보통의카스미 다마다신야 미우라토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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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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