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의 카스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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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는 것은 사실 아니다. 실제로 카스미의 경우에는 누군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해 오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콜센터에 이어 유치원에 다니며 생활비를 벌고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며,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족과 안부를 나누는 그런 삶이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쳐왔던 첼로 연주를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조차도 세상이 말하는 보통의 삶과 닮아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꿈 대신 현실을 살아가는 경험 한번 정도는 하지 않나.
그녀의 삶이 타인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아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다. 무조건적으로 결혼만을 밀어붙이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다그쳐 오는 동생도. 연애나 성적인 흥미가 전혀 없어서 고백을 받아줄 수 없다는 진심을 꺼내보여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고 떠나가는 가까운 친구도 모두. 카스미가 가진 성정체성을 밝히지 않는 이상 이 거리가 저절로 줄어들 리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반복해서 바다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슬프게도 자신이 있는 그대로 놓일 수 있는 곳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뿐이니까.
본인이 동성애자라는 고백을 해오는 중학교 동창의 모습을 카메라가 담아내고, 영화의 중후반부를 지나며 가장 의지하게 되는 친구 마호(마에다 아츠코 분)가 AV 배우 출신이라는 설정을 갖게 되는 것 모두는 역시 카스미와 더불어 한 사회에서 소수자로 놓인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도 존재할 수 없고, 꼭 성정체성이 아니더라도 외부의 시선과 말들로 인해 스스로의 삶을 제대로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금씩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 이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 외부에 놓인 이들의 편협한 생각과 보편성에만 기댄 강요와 억압이라고 말이다.
04.
무엇도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카스미가 '자신만의 보통의 삶'으로 더 자신 있게 나아가게 되는 것은 두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다.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 만들게 되는 동화 신데렐라 영상의 재해석 작업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데이트하게 되는 남자 동료 교사와의 대화. 두 과정 사이에 다소 차이는 있다. 동화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장에 맞춰 바꾸고자 하는 행위는 적극적 개입에 해당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 또한 세상의 관습적인 시선에 맞서 행동하는 일이다. 카스미가 만든 동화 속 신데렐라가 왕자와의 결혼에 의문을 갖고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유치원 아이들이 배제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동화로 인해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잘못이 아닌 잘못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남자 동료 교사와의 대화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카스미가 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과 같은 행동뿐이다.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혹시나 모를 고백에 대비해 미리 경고하는 것. 앞서 동화를 재해석했던 모습에 비하면 소극적인 태도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카스미가 마음의 평안을 얻고 다음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게 되는 것은 오히려 이 쪽의 경험이다.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는 남자 동료 교사의 태도 앞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 사회에도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그래서 처음 자신이 설정했던 걸음의 모습 그대로 나아갈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친구 마호도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인물이지만, 완전한 타인으로부터의 '바다', 이해의 공간을 만났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처음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